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씨. 8월 31일 여의도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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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문화계도 50대가 주역일까.
최근 KBS 제2라디오(해피FM)가 단행한 개편 방향은 “중장년층 맞춤형 채널”이다. 개편에 따라 31일부터 마이크를 잡게 된 진행자 라인업도 이들 세대에 맞춰져 있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김태훈의 프리웨이’ㆍ오전 7~9시), 가수 주현미(‘주현미의 러브레터’ㆍ오전 9~11시), 가수 겸 MC 임백천(‘임백천의 백뮤직’ㆍ정오~오후 2시), 방송인 김혜영(‘김혜영과 함께’ㆍ오후 2~4시) 등으로 이들의 평균 나이는 57.5세. 모두 1980년대부터 활동했거나 당시 20대를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쟁시간대 타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30~40대를 내세웠다는 점과 비교된다.
1990년대 후반 ‘386’이라는 명칭으로 통칭하면서 하나의 세력으로 등장한 60년대생들이 486ㆍ586을 거치며 정치ㆍ사회ㆍ문화 담론의 주도층으로 자리 잡은 것은 더는 새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방송의 타깃층을 20ㆍ30세대에 맞추는 것이 불문율처럼 작용하는 미디어 세계에서 특정 프로그램이 아닌 채널 방향 자체를 중장년으로 맞췄다는 점은 386세대의 힘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KBS 제2라디오 개편으로 31일부터 진행을 맡은 디제이들 [사진 KBS] |
한 예능 PD는 ”90년대 유명했던 중장년층 연예인들이 끌고 가는 SBS 예능 ‘불타는 청춘’ 같은 프로그램은 이전 세대에선 볼 수 없었던 콘셉트“라며 ”이들 세대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이들의 관심거리와 궁금함은 문화적 상품이 될 수 있다. 과거 방송인들이 30대 이후엔 메인 예능프로그램 MC를 맡기 어려운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유재석ㆍ강호동ㆍ신동엽 등이 20년 가까이 장기집권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말했다.
지난해 출간되어 화제를 모은 ‘386 세대유감’은 이들이 30·40대보다 높은 출생률로 인해 숫자가 많고, 고도성장기라는 '행운'을 누렸으며, 서울 집값이 폭등하기 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서울 주요 지역에 아파트를 마련한 것이 현재의 '권력'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반면 이에 대해 '희생은 축소하고 혜택만 부각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이런 담론에 대해 50대 방송인은 어떻게 볼까. KBS 제2라디오 개편에서 ‘김태훈의 프리웨이’의 진행을 맡은 김태훈(51)씨를 31일 첫 방송 직후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을 “민주화운동을 이끈 87세대와 X세대의 중간쯤 있는 89학번이자, 빌보드 키즈”라고 소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방송인 강호동, 유재석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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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오전 7~9시대는 시사프로그램의 전쟁터다. 중장년을 위한 팝을 들려주는 방송이라는 구성이 독특하다.
A : 40대 중반에서 50대에 걸친 세대가 ‘빌보드 키즈’다. 소위 ‘80년대 빌보드’ 음반을 들으면서 젊음을 보낸 세대다. 나도 KBS 라디오 ‘황인용의 영팝스’에서 들려주는 팝송을 들으며 자랐고, 그 영향으로 직업도 음반회사를 거쳐 팝 칼럼니스트가 됐다. 당시 젊음을 위로하던 미디어는 라디오가 유일했고, 그런 점에서 여전히 라디오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음악을 중심에 놓고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층 역시 40대 중반~50대라고 생각한다. 선곡도 80년대~90년대 빌보드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던 곡들이 중심이다. 오전 시간대지만 메탈리카나 미스터빅 같은 헤비메탈 계열도 들려주려고 한다.
Q : 주 타깃 청취자를 중장년층으로 맞춘 것도 인상적이다. 이 세대의 특징은 뭐라고 보나
A :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 중 하나다. 70년대까지 청소년들은 옷 하나를 사도 부모님을 대동하고 나가야 했다. 자기 취향이라는 게 없었다. 그런데 80년대 경제부흥의 성과가 있고, 교복자율화ㆍ맞벌이 부부라는 게 나왔고, 경제적 풍족과 문화적 취향이라는 게 가능한 세대였다. 한편으론 20대부터 무언가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세대다. 낮잠만 자도 죄의식을 느낄 정도로 어떤 목적을 위해 평생을 전력투구한 세대다. 은퇴가 다가오는 지금, 어떤 면에서는 매우 지쳐있기도 하다.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씨. 31일 여의도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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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젊은 세대는 386 세대를 ‘특권 세대’라고 부러워한다.
A : 남의 팔이 부러진 것보다 자기 손가락 꺾인 게 아픈 게 사람 마음이다. 386세대에도 고생한 사람이 있고, ‘너희는 누렸으니 입 다물어라’라고 한다면 서운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어른 세대로서 다음 세대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지 못한 건 반성해야 한다.
Q : 정치뿐 아니라 사회 각 방면에서 386 세대가 장기집권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A : 방송가는 냉정하다. ‘의리’로 누굴 끌어주거나 맞춰주는 곳은 아니다. 과거엔 문화계에서 10ㆍ20대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그나마 돈을 쓰는 게 40ㆍ50대다. 요즘 트로트 열풍도 마찬가지다. 다만 X세대를 비롯해 지금의 40대는 20ㆍ30대와 50대 사이에서 끼인 측면도 있다. 자신들의 세대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 같다.
Q :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A : 이제는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창한 꿈보다는 하루하루가 평화로웠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루 리드(Lou Reed)의 ‘퍼펙트 데이( Perfect Day)다. 노래 가사는 동물원에 가서 먹이를 주고, 공원에서 음료수도 마시고 왔는데 완벽한 날이라는 내용이다. 중장년층에게 ‘여전히 건투를 빈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세대가 어떻게 보든 자신이 볼 때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 된 거다. 이제 젊은 세대에게 사회 권력을 넘기고 조금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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