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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왜 집값은 오르는데 물가는 상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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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경제학 시즌2-38] 역대 가장 긴 장마로 채소와 과일 가격이 급등했다. 이런 뉴스가 기사화되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우스갯소리를 각종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소득은 더디게 느는데 생활비 부담은 가파르게 증가해 살림살이가 팍팍하다는 서민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일반인이 체감하는 물가와 달리 주요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지표에 따르면 실제 물가 상승률은 그리 높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연평균 0.4% 수준으로, 일본은 0.5%, 미국은 1.8%에 그쳤다. 코로나19로 경기가 하강하면서 올해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보다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경제기구들이 산출하는 물가지표와 시민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물가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학자들은 통계지표 산출과정상 기술적 요인들로 물가지수와 체감물가 사이 괴리를 설명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요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이유로 물가지표와 체감물가 사이 괴리율이 더 커졌다. 국민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주택가격지수 자료에 따르면 전년 대비 7월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대략 7%다. 최근 주택가격 상승이 정치적인 이슈가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데 이 같은 높은 주택가격 상승분은 물가지수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주택 매입은 소비 지출이 아니라 투자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적인 의류나 생필품에 대한 지출과 달리 주택은 본인이 거주하다가 매각하면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특히 요즘같이 주택가격이 상승할 때는 원금뿐만 아니라 시세차익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CPI뿐만 아니라 GDP디플레이터 등 다른 물가지수를 산정할 때도 신규 주택 건설을 제외한 기존 주택의 가격 상승분은 물가지표 산정에 포함되지 않다. CPI에 영향을 미치는 주거 관련 항목은 전·월세 관련 지출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난해 대비 서울의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7%인 데 비해 같은 기간 전세가격 상승률은 2% 정도에 그쳤다. 따라서 CPI를 산정하는 데 주택가격 상승분은 일반인이 체감하는 만큼 반영되기 어렵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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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주택 거래는 투자 활동으로 분류돼 물가지수에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집은 생존에 꼭 필요한 재화다. 따라서 주식이나 금과 같은 다른 자산 가격 상승과 달리 주택가격 상승은 서민들의 실질적인 지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처분소득은 정부에 납부하는 세금만을 뺀 값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가처분 소득은 원래 소득에서 준조세와 비소비지출에 해당하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과 금융사에 상환해야 할 대출 원리금도 함께 차감돼야 한다. 집값이 상승하면 매달 은행에 갚아야 할 상환금액이 증가한다. 따라서 소득은 변화가 없는데 상환 부담이 증가하므로 새로 주택담보 대출을 받은 가계 대부분은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이 감소했으므로 물가가 상승한 것처럼 구매력 감소를 경험하게 돼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진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주택 구입에 지출하는 비용은 소비 지출이 아니라 회수가 가능한 투자활동이다. 따라서 주택 구입에 많은 비용을 지불해 주머니가 얇아진 것을 두고 물가가 상승한 것으로 생각하는 상황은 일반인의 '착시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가지수가 실물경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 같은 의견을 일반인의 착시현상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물가지표들의 주요한 한계점이 최근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화폐이론에 따르면 실제로 통화 수요가 증가하지 않았는데도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을 증가시키면 물가는 상승한다. 즉 화폐의 실제 수요가 증가하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시중에 더 많은 유동성을 공급하면 돈의 가치가 하락한다. 돈의 가치가 하락하면 전보다 물건을 살 때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므로 물가는 상승하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본원통화를 전보다 10배 이상 더 발행했다. 통화정책에 유동성 지표로 활용하는 광의통화(M2) 역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실물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유동성이 빠르게 증가하면 전통적인 통화이론에 따라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계 경제는 오히려 저물가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확장해도 큰 변화가 없는 물가지수와 달리 자산 가격은 대체로 상승했다. 코로나19로 주요 중앙은행들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시하자 글로벌 증시의 종합주가지수, 원자재 가격과 부동산 가격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으며, 그 이상 상승한 지표도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던 3월 말 대비 코스피는 67%가량 상승했으며 나스닥은 61%, 닛케이 지수는 약 40% 상승했다. 선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 가격과 은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요 경제기구들이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 가운데 주가와 각종 자산 가격이 이처럼 상승한 것은 기존 통화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는 시장의 넘쳐나는 유동성이 실물경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자산 시장에서 흘러들어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첨단 경제이론과 금융 모형으로 무장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의 통화전문가들이 기준금리를 결정하고, 통화량을 조정할 때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지표는 전통적인 물가지수와 실업률 지표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글로벌 경제 상황은 풍부해진 유동성이 실물경제를 거치지 않고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 시장으로 바로 유입되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물가지표만으로 금융 시장의 유동성과 통화가치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케이스-실러지수(Case-Shiller Index)와 같은 자산 시장의 인플레이션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들이 활용되고 있으며 자산가격 인플레이션(Asset price inflation)이라는 개념도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최근 유동성과 물가 간 연결고리가 전통적인 통화이론처럼 강력하지 않고 느슨해진 만큼 기존 물가지표만 고집해서는 정부나 투자자들이 오류를 범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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