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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6 (일)

이슈 故고유민 선수 사망사건

故 고유민 선수 유족 "극단적 선택은 현대건설 배구단 사기극·따돌림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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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고유민 선수의 유가족들이 “현대건설 배구단의 의도적 따돌림과 사기극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간 고 선수는 악성 댓글에 괴로워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가 많았다. 이 사건 이후 악성 댓글로 고통받는 스포츠 선수들이 많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스포츠 뉴스 댓글을 폐지키로 했다. 하지만 고 선수 어머니 권모씨와 체육시민운동단체 ‘사람과 운동’ 대표 박지훈 변호사, 더불어민주당 송영길·박정 의원은 2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악성 댓글은 죽음으로 내몬 종범”이라며 “주범은 구단과 코칭스태프들의 의도적 따돌림과 법·규정을 모르는 25살 여성 배구 선수를 상대로 한 구단의 ‘사기 갑질’”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고 선수가 생전 사용하던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포렌식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조선일보

故 고유민 선수의 어머니(사진 가운데)가 20일 오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하는 모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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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변호사는 “고인이 현대건설에서 뛸 당시 가족·동료들과 나눈 메시지를 보면 ‘감독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 ‘나랑 제대로 말한 적 한번도 없다’고 했다”며 “의도적 따돌림은 훈련 배제로 이어졌고, 고인은 기량 저하에 따른 불안감과 소외감으로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고 선수는 줄곧 레프트로 활약하다 2019~2020시즌 도중 주전 리베로가 빠지자 리베로로 포지션을 바꿔 경기에 투입됐는데, 훈련에서 계속 배제되면서 새 포지션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프로구단은 선수들의 인권을 존중할 의무가 있고, 체력 및 전술적 기량 유지를 위해 선수를 팀 훈련에 차별 없이 참여시켜야 한다”며 “이는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 선수가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숙소에서 수면제를 복용했는데, 이도희 감독과 배구단은 이 사실을 알고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배구단이 고 선수를 상대로 트레이드를 해줄 것처럼 속여 계약 해지에 합의하게 한 후, 갑자기 임의 탈퇴를 공시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른 팀에서 배구를 계속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던 고 선수가 임의 탈퇴 공시로 어느 팀에도 가지 못하게 되자 이를 비관했다는 것이다. 임의 탈퇴가 되면 해당 구단으로만 복귀가 가능하며 다른 팀에서 뛸 수 없다.

박 변호사는 “괴로움에 시달리다 올해 2월 29일 숙소를 나온 고 선수는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구단은 고 선수에게 트레이드를 시켜주겠다면서 선수 계약 해지 합의서에 사인하라고 요구했고, 고 선수는 구단을 믿고 3월 30일 이 합의서에 사인했다. 원래 계약은 올해 6월까지인데 이 합의에 따라 급여도 2월분까지만 지급했다”며 “그런데 구단은 한달이 지난 5월 1일 일방적으로 고 선수를 임의탈퇴 처리했다. 자신의 임의 탈퇴 소식을 들은 고 선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배신감과 절망감을 토로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 선수는 코트를 그리워했는데, 임의 탈퇴 족쇄에 묶여 프로배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절망했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또 현대건설 배구단의 임의 탈퇴가 적법하지 않다는 주장도 했다. 3월 30일에 계약해지가 됐다면 현대건설 소속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구단이 임의 탈퇴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한국배구연맹에 확인한 결과 연맹도 계약 해지 사실을 몰랐다”며 “연맹에선 계약 해지한 선수를 임의 탈퇴로 묶는 건 상식 밖의 얘기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현대건설이 고 선수 뿐만 아니라 연맹도 속였다는 주장이다.

박 변호사는 “고 선수는 다시는 배구를 할 수 없다는 자신의 상황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구단은 선수를 속였다는 사실을 끝까지 숨겼다. 젊은 20대 여성 선수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았다. 언제나 쓰다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자 무력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박 변호사는 구단과 관계자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건설 배구단 측은 “경기·훈련에서 제외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며 “고인이 2019~2020시즌 중이던 올해 2월 29일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팀을 이탈했고, 확인 결과 ‘인터넷 악플 때문에 심신이 지쳐 상당 기간 구단을 떠나 있겠다’는 의사를 밝혀 3월 30일자로 계약을 중단했다. 이후 한국배구연맹과 함께 협의해 5월 1일부터 임의 탈퇴를 공시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6월 15일에도 고인과 만나 향후 진로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결과 배구가 아닌 다른 길로 가겠다는 의사가 강해 배구에 대해 미련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송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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