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사의 표명은 뜻밖인 듯 뜻밖이지 않은 카드로 비친다. 올 법한 것이 왔는데 조금 일찍 왔을 뿐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무엇보다 김조원 민정수석의 잠실아파트 '꼼수 매각' 논란이 컸다. 잠실과 도곡동에 아파트 두 채를 가진 그는 청와대의 다주택 해소 의지에 따라 한 채를 급하게 팔아야 할 처지였는데도 잠실아파트를 주변 시세보다 1억∼2억원가량 높게 내놓음으로써 애초 매각할 의사가 없었다는 지탄을 받았다. 불 난 민심에 부채질도 모자라 기름을 부은 꼴이다. 누가 팔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부동산 정책 신뢰를 높이겠다며 청와대는 1주택 소유 실천을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그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집이냐 직(職)이냐' 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손가락질까지 감수해야 하니 자승자박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당장 청와대 참모들의 사의 표명에 집 팔기 싫어서 그만둔다는 비아냥이 잇따르고 집값이 더 오를 거라는 신호를 시장에 끊임없이 보내는 셈이라는 조롱까지 나오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청와대는 더는 이런 말이 돌지 않게끔 단호할 필요가 있다. 그건 이번 사의 수용 여부와 인사 폭과 무관하다. 약속한 대로 이달 말까지 비서관급 이상 참모진 다주택자 8명을 0명으로 만들어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 불신을 조금이라도 극복해야 한다. 예상되는 교체 인사는 응당 분위기 일신의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의 동반 하락에 제동을 걸 만큼의 신선한 발탁이라면 바람직할 것이다. 이번에 기용되는 참모는 문 대통령과 임기 종료를 함께할 공산도 크다. 그런 만큼 새로운 일을 벌이겠다는 열정보다는 균형감각이 더 중요하다. 대통령의 정세 이해와 상황인식을 돕고 내각 중심 집행 권력의 성과 내기를 독려하며 국정 상황을 관리하는 데 역량을 발휘할 참모가 요구된다. 예컨대 시민들은 코로나 경제난에 내내 힘겨워하는데 일부 통계를 가지고서 대통령이 '기적 같은 선방'이라는 메시지를 내는 것은 부적절하다. 온도도 실제온도가 있고 체감온도가 있듯 사실도 물리적 사실이 있고 체감적 사실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논평과 언어는 통계의 물리적 사실보다는 그 뒤에 숨어 있는,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적 사실에 토대를 둬야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 여권이 그야말로 위기다. 일말의 반전의 계기라도 제공할 청와대 인사와 쇄신이 없다면 민심 이반이 가속하고 위기는 더 커질 것이다. 사의표명 그 자체보다 이후의 문 대통령의 판단과 청와대의 움직임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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