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 지난 5월 자문단회의 거쳐 철거 결정
근거법 없자 충북도의회 철거 조례 발의
진보·보수 단체 철거 놓고 찬반 갈등
시민단체 "공론화 없이 진행하다 악화"
청남대에 있는 전두환(왼쪽)·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 [연합뉴스] |
옛 대통령별장 청남대에 설치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 철거를 두고 뒤늦게 여론조사가 진행된다.
29일 충북도의회 등에 따르면 ‘충북도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 제정을 위한 여론조사가 다음달 22일 진행될 예정이다. 이보다 앞서 각계 전문가와 도민이 참여하는 공청회와 토론회도 연다. 두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를 놓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관 단체와 보수단체 사이에서 찬반 여론이 들끓자 철거 결정 3개월 여 만에 도민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취지다. 충북도가 충분한 법률 검토 없이 지난 5월 동상 철거를 발표했다가 도의회에 공을 넘기면서 괜한 갈등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식 충북도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동상 철거 관련 조례안은 ‘전직 대통령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도지사가 동상 건립 등 기념사업을 중단 철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노 전 대통령은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죄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충북도는 해당 조례가 제정되면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과 이들의 이름을 붙인 둘레길, 기록화 등을 철거할 계획이다.
충북 5·18민중항쟁기념사업위원회가 지난 5월 13일 충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북도는 옛 대통령별장인 청남대 내에 설치된 전두환·노태우의 동상을 철거하고, 그들의 이름을 딴 대통령길을 폐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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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회 행정문화위원회는 지난 17일 열린 제384회 임시회에서 이 조례안을 심사할 예정이었으나 찬반갈등이 커지자 여론을 듣겠다며 상정을 보류했다. 충북도의회 임영은 행정문화위원장은 “동상 철거를 두고 갈등이 커지면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더 듣기 위해 여론조사를 하게 됐다”며 “조사는 시군별, 연령별로 고르게 500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청회와 토론회는 다음달 20일께 열 계획이다.
도의회는 찬성 의견이 많으면 오는 9월 본회의에 조례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반대 의견이 많으면 동상 철거 결정은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충북도는 지난 5월 14일 충북 5·18민중항쟁기념사업위원회 요구에 따라 충북 지역 시민사회단체, 도정자문단 등과 회의를 열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자문단은 동상 철거의 근거로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을 내세웠다. 이 법 7조 2항에 따르면 재직 중 탄핵을 당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외국 도피나 국적을 상실할 경우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 청와대 본관 건물을 60% 축소한 형태로 만든 대통령 기념관. 2015년 6월 준공한 이 전시관은 대통령 기록화와 대통령 체험장이 마련돼 있다. [사진 청남대관리사업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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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법률은 동상 철거의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 범위에 동상 건립과 철거에 관한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또 이 법을 적용할 경우 동상을 세운 충북도의 행위 자체가 법을 어긴 꼴이 된다. 충북도는 2015년 관광 활성화 목적으로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르는 9명의 대통령 동상을 청남대에 세웠다.
이재수 충북자유민주시민연합 대표는 “충북도가 5년 전 명소화 사업을 위해 만든 동상을 법을 지키겠다고 스스로 철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동상을 세울 때는 이들 전직 대통령이 금고형 이상을 받은 전력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선영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충북도가 동상 철거 결정에 앞서 여론 수렴 절차만 제대로 거쳤어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남쪽의 청와대’란 뜻의 청남대는 1983년 건설됐다. 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호수 경치를 보고 감탄해 “이런 곳에 별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여름 휴가 등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위주의 상징인 청남대를 주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선거 공약을 이행하면서 2003년 4월 18일 청남대 소유권을 충북도에 이양했고 이후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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