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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인간’의 탄생 가져온 조로아스터의 종교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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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선악 대비로 도덕적 의무 일깨운 최초의 보편종교

조로아스터교 연구 권위자 메리 보이스가 추적한 탄생사


한겨레

조로아스터교의 역사

메리 보이스 지음, 공원국 옮김/민음사·2만8000원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한 수백 년의 역사를 ‘축의 시대’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 시대에 서쪽의 그리스에서부터 인도를 거쳐 동쪽의 중국에 이르는 ‘지식 벨트’에서 인류사에 처음으로 철학적 사유가 등장하고 보편적 종교가 탄생했다. 이 ‘축의 시대’의 서막을 알린 것이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일어난 조로아스터교다. 예언자 조로아스터가 창시한 이 종교는 세속적이고 구복적인 기존의 원시적 종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윤리적 호소력을 품은 혁명적인 종교였다.

영국의 조로아스터교 연구 권위자 메리 보이스(1920~2006)가 쓴 <조로아스터교의 역사>는 이 특별한 종교의 탄생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는 책이다. 보이스는 방대한 초기 이란-인도 문헌을 샅샅이 뒤져 시간의 더께 속에 잠든 조로아스터교의 역사를 되살려냈다. 전체 3권 가운데 첫 권을 옮긴 한국어본 <조로아스터교의 역사>는 조로아스터교의 토대가 된 고대 인도-이란의 공통 신앙, 예언자 조로아스터의 활동, 조로아스터교의 초기 형태를 추적한다. 특히 지은이는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 살던 인도-이란의 공통 조상이 섬겼던 다신교 신앙을, 조로아스터교의 아베스타 경전과 고대 인도인들의 리그베다 경전을 비교해가며 상세히 살핀다. 이 다신교 신앙 속의 여러 신들이 조로아스터교에서 선과 악을 대변하는 존재로 체계적으로 집결했다. 또 조로아스터교가 창안한 천국과 지옥, 최후의 심판, 육체의 부활, 영원한 생명은 후대에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조로아스터교의 탄생 시기는 기원전 1400년에서 1000년 사이로 추정된다. 아득한 옛날 사람이지만 조로아스터의 출생과 행적은 아베스타 경전에 기록된 것들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아베스타의 핵심을 이루는 찬송가 ‘가타’는 조로아스터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 노래를 통해 예언자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조로아스터라는 이름은 ‘낙타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목민의 후손임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다. 이 예언자의 가계도 어느 정도 확인되는데, 조로아스터는 아버지 포우르샤스파, 어머니 두그도바의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조로아스터는 일곱 살 무렵부터 사제 양성 훈련을 받아 열다섯 살에 ‘완전한 지식을 갖춘 사제’ 곧 ‘자오타르’가 됐다. 그러나 기존 지식에 만족하지 못한 젊은이는 스무 살 때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집을 떠났다. 삶의 의미를 물으며 세상을 떠돌던 방랑자는 10년 뒤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를 만나는 놀라운 계시 체험을 했다.

그 신은 조로아스터에게 자신을 위해 사역하라고 명했고, 새로 눈을 뜬 예언자는 이 부름에 마음으로 복종했다. 조로아스터는 고향으로 돌아와 신의 가르침을 열정적으로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고, 낯선 복음은 박대받기 일쑤였다. 10년 동안 사역에 힘썼으나 예언자는 사촌 한 명을 개종시키는 데 그쳤다. 박해를 못 견딘 조로아스터는 이렇게 절규했다. “나는 어느 땅으로 도망쳐야 합니까? 도대체 어디로 달아나야 합니까? 친척과 친구들이 나를 밀어냈습니다.” 고향을 떠난 조로아스터는 이웃 나라에서 비로소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찾았다. 그 나라의 왕비가 조로아스터의 새로운 교리를 받아들였고 이윽고 그 나라 왕도 새 가르침으로 돌아섰다. 조로아스터교가 번창할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조로아스터는 77살이 되던 해에 기존 종교의 사제가 보낸 자객의 손에 암살당했다고 한다.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은 그 시대 신앙관의 일대 혁명이었다고 할 만하다. 이 예언자는 온갖 신들이 경합하던 다신교 전통에 맞서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 권위의 신으로 세웠다. 아후라 마즈다는 그 시기 언어로 ‘지혜’(마즈다)의 ‘주님’(아후라)을 뜻한다.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에서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선과 악으로 선명하게 나누었다는 점이다. 다신교 전통에서 신들의 세계에는 선신과 악신이 뒤섞여 있었고, 희생제물을 드리기만 하면 무조건 복을 주는 신들을 따르는 숭배자들이 많았다. 인드라가 대표적이다. 이 신은 숭배자가 죄를 지었는지 올바르게 살았는지에는 신경 쓰지 않고 권력과 부를 베풀었다. 인간의 욕망에 봉사하는 비윤리적인 신이었던 셈이다. 조로아스터는 이 만신전의 신들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선에, 다른 한쪽은 악에 배치했다. 그리하여 선을 관장하는 아후라 마즈다 아래 선한 하위 신격들이 조력자로 들어섰다. 반대로 악의 편에는 우두머리 악령 ‘앙그라 마이뉴’ 밑으로 여러 하위 악령들이 모였다.

조로아스터가 본 세상은 선과 악의 두 세력이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우는 거대한 전쟁터였다. 인간들은 이 싸움에서 한쪽을 선택해야 했다. 올바름 곧 ‘아샤’를 선택하면 선한 신과 한편이 되는 것이고, 아샤를 저버리면 악령과 한패가 되는 것이었다. 인간의 선택이 중요한 것은 선한 신들이 충분히 강력하지 않아서 악을 무찌르려면 인간의 힘을 빌려야 했기 때문이다. 선의 편에 선 사람은 악의 괴롭힘으로 인한 슬픔과 고난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됐다. 조로아스터는 이 싸움 끝에 선의 세력이 승리하리라고 확신했고, 마지막 날에 모든 죽은 자와 산 자가 선업과 악업에 따라 심판받고 선한 자들은 천상의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리라고 예언했다.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을 따르는 인간은 자기 자신의 육체적·도덕적 상태를 보살펴 최고의 수준으로 이끌어 올릴 의무가 있었고, 마찬가지로 다른 인간들을 돕고 아낄 의무가 있었다. 더 나아가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가능한 한 동물을 덜 괴롭히고, 식물과 나무가 잘 자라도록 북돋우고, 땅을 갈아 기름지게 하며, 물과 불을 오염시키지 않는 것’도 조로아스터교도의 의무에 속했다. 조로아스터의 가르침과 함께 ‘윤리적 종교’가 탄생했고 이 종교와 함께 인류가 ‘윤리적 삶’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했음을 이 책은 알려준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한겨레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속에 등장한 조로아스터.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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