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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서울 집값 잡으려면…" 文에게 보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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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19일 서울 강동구의 아파트 밀집 지역.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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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님께.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하늘 위에서 보니 혼란스러운 한국 부동산 시장이 걱정되네요. 원로 철학자로서 조언을 좀 해주고 싶어 편지를 보냅니다.

엊그제(21일) 한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보니 대통령님의 임기 동안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 4억5000만원(53%)이나 올랐더군요.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이 올랐다던데. 집값은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지만, 급격한 변화는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준다지요. 더욱이 대통령님이 나름대로 열심히 안정화 노력을 해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이 지경이니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제가 볼 때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집을 사지 말라” “가구당 1채만 남기고 다 팔라”며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잘못이 컸습니다. 제 책 『수사학』에 나와 있는 설득의 3요소(로고스·파토스·에토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해 “수요를 줄이라”는 설득은 실패했고 가격 폭등을 누르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앙일보

아리스토텔레스 조각상.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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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부터 봅시다. 한국말로 이성(理性)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이번 정부에서 서울 아파트값이 14%가량 올랐다”고 했습니다. 대통령님은 지난해 말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말들을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서울 어디든 동네 복덕방에만 나가 봐도 불안정한 현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웬만한 아파트는 가격이 2배가량씩 뛰었습니다. 물론 정부 주장에도 근거가 있을 텐데, 계속 근거를 공개하지 않으면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결국 “집값이 별로 안 올랐으니 불안해하면서 집을 살 필요가 없다”는 설득이 통하지 않은 겁니다.

다음은 파토스, 감성입니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님은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정작 자신은 강남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장 전 실장님뿐만 아니라 많은 고위 공직자님들이 다주택자이며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갖고 있습니다. 국민은 “개·돼지는 강남에 들어올 꿈도 꾸지 말라는 거냐”며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감정을 상하게 하면서 어떻게 서울 주택에 대한 수요를 줄이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은 에토스로써 화자 자체의 품성입니다. 설득의 주체가 정부이므로 정체성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이번 정부는 인적 구성 면에서나 국정 철학 면에서나 노무현 정부의 후신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심각한 집값 폭등으로 몸살을 앓았던 전력을 고려하면 국민은 “이번에도 집값이 폭등하겠다”고 예단하기 쉽습니다. “진보 정부가 집권하면 집값이 오른다”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설득의 3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게 에토스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감동적으로 말해도 그 사람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면 바로 귀를 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은 국민에게 얼마나 큰 신뢰를 줬는지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대안을 말하자면, 정책 책임자 교체 등을 통해 정체성 쇄신을 해보는 게 어떨까요. 노무현 정부 때와 판박이처럼 수십 차례에 걸쳐 땜질식 부동산 대책을 남발하는 행태도 버려야 합니다. 그 이후엔 명확한 사실에 근거해 분석과 제안(로고스)을 하고 국민의 고통을 어루만질 수 있는 언어를 사용(파토스)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제 조언이 조금이나마 도움되길 바랍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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