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테크는 종종 혁신의 동의어로 여겨진다. 고품질이나 고성능을 전제하기도 한다. 이런 소비자 인식은 브랜드가 된다. 결국 하이테크는 기업 입장에서 높은 마진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제품에 최신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럼 이런 제품은 하이테크가 주는 고수익이나 오라(후광)와 거리가 먼 것일까. 진정 하이테크 혁신은 태생부터 다른 것일까. 혹 이곳으로 통하는 다른 통로는 없을까. 두 가지 사례를 떠올려 보게 된다.
1990년 질레트는 센서를 내놓는다. 이 두 날짜리 면도기는 최고의 혁신 제품이 된다. 질레트에는 이미 트랙2나 아트라 같은 두 날 면도기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면도날은 고정식이었다. 센서는 면도날에 스프링을 끼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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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이야 새로운 것이 없다. 면도날이 얼굴 윤곽을 따라 움직이면 좋을 줄 누가 몰랐겠는가. 그렇다고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이렇게 디자인하고 보니 부품 수가 5개에서 23개로 늘었다. 예전같이 면도날을 접착하니 금세 헐거워졌다. 게다가 두 날 위치도 정확히 조립돼야 했다.
고민 끝에 질레트는 면도날을 레이저로 용접해서 붙이기로 한다. 조립 오차도 0.005㎜로 줄여 정했다. 면도기엔 새로운 기준이지만 그렇다고 매우 어려운 로켓 사이언스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야 하다 보니 이 같은 공정이 가능한 곳은 질레트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면도기는 하이테크 제품이 된다. 이렇게 면도기는 센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다른 사례도 얼마든 있다. 존슨앤존슨의 아큐브는 콘택트렌즈 대명사다. 그러나 이런 아큐브 명성을 쌓은 건 일회용 렌즈 덕이다. 1988년 7월 아큐브는 최초의 일회용 렌즈를 내놓는다. 일주일 동안 빼지 않고 쓴 다음 버리는 식이다. 엄청난 혁신같지만 공기 투과를 위해 얇아진 걸 제하면 예전 소프트렌즈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렌즈 재료도 디자인도 달라진 건 없었다.
실상 난제는 균질성에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갈아 끼는 렌즈의 형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어지럽거나 착용감이 떨어진다. 똑같은 모양으로 성형할 수 있어야 했다. 게다가 한 번 쓰고 버리는 만큼 생산비도 낮춰야 했다. 이 정도 공정관리가 되자 품질 검사 비용이 줄었다. 그리고 생산이 궤도에 오르자 출시 몇 개월 만에 미국 전역 판매가 가능해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경쟁 기업도 곧 일회용 렌즈를 내놓는다. 그러나 공정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출고량은 제자리였다. 이 1년 동안 존슨앤존슨은 이 시장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고, 아큐브의 리더십은 이후 바뀐 적이 없다.
우리는 혁신으로 통하는 길이 하나만은 아니라는 점을 안다. 그렇다면 하이테크 제품은 어떨까. 태생이 하이테크인 제품만 고수익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일까. 센서나 아큐브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질레트와 존슨앤존슨는 하이테크로 통하는 다른 통로를 찾아낸 셈이었다. 그리고 이 두 기업은 오늘도 자신이 창조한 하이테크가 만든 고수익을 누리고 있다. 당신 손안의 제품이 하이테크인지 아닌지는 절반쯤 당신 몫일지도 모른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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