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9 (월)

[왜냐면] 김누리 교수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 김종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김종영 ㅣ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낡은 무기들은 썩는다. 새로운 무기들을 만들어라, 그리고 똑바로 쏘아라.”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의 이 말은 김누리 교수가 왜 한국 교육의 희망으로 떠올랐는지 은유적으로 대답하는 데 적합하다. 김 교수는 대학통합네트워크, 대학 무상교육, 고교평준화, 그리고 대입자격고사화, 이 네가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민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교육계에 새로운 무기가 나타나 한국 교육 문제를 똑바로 쏜 것이다.

그 때문인지 김 교수를 비판하는 소리가 들린다. 독일 지성사의 슈퍼스타 괴테는 자신의 적의 수가 한 ‘군단’이나 된다고 말하고 자신의 적들을 네가지로 분류했다. 무지한 자, 질투하는 자, 성공하지 못한 자, 그리고 합당한 이유가 있는 자. 김누리 교수는 대학이 평준화되었지만 형평성의 토대 위에서 탁월성을 추구하는 독일 대학체제를 모델로 한국 대학체제를 전면개혁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최성수 교수는 최근 <한겨레> ‘왜냐면’ 투고(‘독일 교육에 대한 오해’)에서 독일은 학생들의 실업계와 인문계의 계열 분리가 일찍 되는데 이것이 가정의 배경과 계급에 따라 정해진다고 독일 교육을 비판한다. 또한 실업계 학생들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기술대학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기회가 균등하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독일에서 실업계 고교를 ‘레알슐레’라고 부르는데 한국식으로 실업고라고 번역하면 곤란하다. 레알슐레 졸업자들은 은행, 사무직, 우체국 등 다양한 화이트칼라 직종으로도 진출한다. 독일에서는 대학을 안 나왔을지언정 한국식의 ‘고졸 출신’이라는 개념이 없다. 직무훈련과 평생교육을 통해서 그 직업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워나간다. 직업교육의 최종 결실인 마이스터(장인)가 박사 못지않은 위상과 대우를 받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독일의 기술대학도 한국식으로 전문대학이라고 번역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의 공과대학에 가깝다. 그러니깐 최성수 교수는 독일의 학교문화, 직업문화, 계층문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식’으로 독일 교육을 평가하고 김누리 교수를 비판한 것이다.

한국의 대학개혁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교육을 통계로 연구하는 교수집단이나 연구자들의 교육체계에 대한 편협한 이해 때문이다. 이들은 ‘전문가’라는 타이틀과 각종 통계를 들이대면서 한국 교육체제가 엄청난 불평등 체제임을 연구를 통해 스스로 밝혔지만 그것을 풀기 위한 해법으로 대학개혁을 하자고 하면 대부분 반대한다. 왜 그러한가? 통계적 방법이 교육 문제를 이해하는 데 부분적으로는 합당하지만 전체 교육체제를 이해하는 데 무감하거나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존 교육연구자들과 김누리 교수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하지만 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나는 교육사회학과 지식사회학의 전문가로 한국 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영향력 있는 교육전문가, 교육관료, 교육정치인들을 대부분 만나보았다. 이들을 만나 한국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해 대학을 상향평준화하자고 하면 대부분 반대한다. 왜 그럴까? 이들 대부분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성공한 사람들로서 한국의 엘리트 대학 독점체제를 당연시한다. 곧 마지막 순간에 이들의 ‘엘리트적 무의식’이 한국 대학개혁을 막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김누리 교수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다. 다만 김 교수가 독일에서 오랜 시간 공부하면서 너무나 불행하고 반교육적인 한국 교육체제를 넘어 ‘다른 교육체제가 가능하다’는 ‘실존적 자각’을 경험했다는 것이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민들은 한국이 선진국임을 비로소 깨달았고 집단적 자신감을 얻었다. 국민들에겐 교육 문제가 너무나 절실하지만 교육당국과 교육엘리트들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때 김누리라는 새로운 무기가 나타나 한국 교육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고 국민들은 열광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기존의 교육체제와 교육정책은 썩었다. 교육당국과 교육엘리트들만 모른 척한다. 한국 교육을 똑바로 세울 기회를 마련하자. 국민이 원한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뉴스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