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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김광일의 입] 좌파 정치인 연쇄 극단 선택에 “이순신도 관노와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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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집단이든 세력이든 그 본질과 본바탕이 드러날 때가 있다. 어떤 개인에 대해서는 같이 바둑을 둬보면 그를 알 수 있다느니, 골프를 같이 쳐보면 알 수 있다느니, 억병으로 취한 상태가 될 때까지 함께 술을 마셔보면 알 수 있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 노름꾼은 같이 노름을 해보면 상대를 알 수 있다고도 한다. 보통은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본바닥이 드러난다. 그런가하면 상(喪)을 당했을 때 즉 초상을 치를 때 어떤 집단과 세력의 본바닥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두 건의 초상을 치르고 있다. 한 분은 나라를 절멸의 위기에서 구출해내신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이 돌아가신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해 위기에 몰린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서울 시장이다. 먼저 부음이 전해진 순서대로 박원순 시장의 자살 사건부터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은 박원순 시장을 서울시가 주관하는 특별시장례, 그리고 5일장으로 치러냈다.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와 애도의 분위기를 한껏 이끌었다. 그의 성추문에 대해 일부 지지자는 "이순신 장군도 관노와 잠자리를 했다"는 말로 옹호 아닌 옹호를 하고 있다. 피해 여성은 관노가 아니고, 더군다나 박원순은 이순신이 아니고,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얼굴이 뜨거워지는 망언이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자살자는 운구가 동네로 들어오는 것부터 막았다.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한 것이다. 천주교는 자살자의 공개 장례미사를 거부한다. 인간의 목숨은 하느님만이 주관할 수 있다는 교리에 따른 것이다. 염수정 서울주교가 박원순 시장을 조문한 것에 대해 지금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과 좌파 집권 세력들은 자살 정치인을 미화하고 기념하는가 하면, 또 선거 때가 되면 자살 정치인을 마치 이념적 마스코트 상징처럼 떠받들고 그의 뜻을 이어받는다고 하는 선전선동을 한다. 자살이 추앙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구한말 때처럼 나라를 구하려고 자결을 했던 독립지사들, 그리고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고 본인의 목숨을 초개처럼 던졌던 의인들, 이런 경우 말고는 없다.

좌파 정치인들의 자살은 스폰서 역할을 한 기업인 회장한테서, 그리고 댓글조작 범인한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에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것이고, 이번처럼 여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해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다. 이들의 최후가 너무 비극적이어서 동정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이 추모와 추앙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 걷잡을 수 없이 ‘정치인들의 연쇄 자살’이라는 베르테르 효과가 번지고 있는 것이 왜 그렇겠는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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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정점(頂點)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종점(終點)으로 평가한다."는 말이 있다. 삶이란 ‘유종의 미’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에게 하니 문 기간이 있듯 망자에게도 애도의 기간이 있으니만큼 지나친 비판을 삼가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다만 지금 사진에서 보여드리는 것처럼 한쪽은 백선엽 장군의 분향소 추모객 행렬이고, 다른 한쪽은 박원순 시장 분향소 추모객 모습인데, 이토록 나라를 갈라놓은 책임은 좌파 집권 세력에게 따져야 하겠다. 또 박원순 시장 한 사람을 놓고 그를 추모하며 성추행 피해자를 오히려 타박하는 움직임이 있고, 박 시장에게 배신감을 토로하는 시민들이 있다. 박원순 시장의 장례는 이렇듯 나라를 두 토막으로 또 갈라놓았다.

오늘 아침 신문들은 두 고인을 애도하는 것 못지않게 나라 국민이 두 갈래로 찢어졌다는 것을 통탄하고 있다. 이것이 장례를 통해서 드러난 좌파 집권 세력의 본바탕인 것이다. 가장 저열한 형태의 편 가르기는 이번 두 곳의 장례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친일이냐 반일이냐, 친북이냐 반북이냐, 친중이냐 반중이냐, 친미냐 반미냐, 애국이냐 매국이냐, 철저하게 나라를 망치는 이분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오늘 경향신문은 "시민들 사이 ‘추모’ ‘배신감’ 교차"라고 했고, 국민일보는 "망자 추모 vs 피해자 고통…‘공·과 프레임’에 갇힌 사회"라고 했고, 동아일보는 " ‘서울시 장(葬)’ ‘2차 가해’ 커지는 논란 속 영결식"이라고 했고, 서울신문은 "추모만 하라는 민주당의 오만"이라고 했고, 조선일보는 "피해자 2차 가해와 망자 조롱, 최소한의 품격도 무너진 사회"라고 했고, 중앙일보는 "여야 조문정치에 광장이 갈라졌다"고 했고, 한겨레는 "피해자 호소 직시가 ‘박원순 추모의 길’ " 이라고 했고, 한국일보는 "박원순·백선엽 추모 싸고 둘로 쪼개진 광장"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권이 백선엽 장군의 서거에 공식 논평을 내지 않는 것은 백 장관이 살아생전 자기네 지지 발언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자기 편, 백 장군은 반대편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편 가르기’ 자체는 늘 봐오던 풍경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오늘 ‘대통령의 안보 행위’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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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무엇으로 안보를 하는가. 직접 총을 들고 휴전선으로 달려갈 일은 없다. 대통령의 안보란 나라에 몸을 바친 호국 영령과 원로들께 최대한의 예우와 보상을 바치며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하와이에서 돌아온 호국영령들을 캄캄한 공항 비행기 속에 하룻밤 이상 기다리게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오바마 대통령 사진에서 보듯 우리 문 대통령도 미리 공항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영령들을 맞이해야 했다. 백선엽 장군 같은 전쟁 영웅이 서거했을 때는 버선발로 뛰어가 빈소를 지키며 대통령이 헌정할 수 있는 국가 최고 무공훈장을 추서하면서 몸소 장례위원장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통령이자 국군통수권자가 해야 할 안보 행위의 시작과 끝이다. 그런 대통령을 보면서 60만 장병이 감격과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해주는 것, 사기가 충천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대통령이 해야 할 안보의 시작과 끝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토방위에 있어서 예비역 병장이 아니라 군 최고사령관인 현역이다. 이것을 모르는 대통령이 지금 우리나라 안보의 책임자라는 것이 걱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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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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