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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조지 콘도 | 구상과 추상 경계 오가는 ‘新입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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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할리우드 스타가 미술품 컬렉션으로 화제가 되듯, 최근에는 국내 연예인들도 미술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컬렉션을 형성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드래곤이 대표적이다. 몇 년 전에 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 80만개가 넘는 ‘좋아요’ 버튼을 받으며 큰 화제가 된 작품이 한 점 있다. ‘거대한 존(Big John)’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뾰족한 이를 드러낸 채 기이하게 뒤틀린 괴물 같은 얼굴을 한 남자의 초상화다. 불룩한 배 위에 편안하게 얹은 손에는 이제 막 태우기 시작한 듯, 불이 붙은 담배가 들려 있다. 괴기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그림을 그린 이는 누구일까. 미국의 인기 초상화가 조지 콘도(George Condo, 1957년~)다.

인기 연예인의 파급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지드래곤 인스타그램은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그에게 단번에 유명세를 안겨줬다. 하지만 콘도가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1957년생인 그는 화가로서는 매우 드물게 미술사와 음악 이론을 전공했다. 어려서 그림을 배우는 한편 기타 연주와 함께 작곡 공부를 했고, 잠시나마 밴드 활동도 했다. 뉴욕 공연 중에 당시 밴드 공연과 함께 독창적인 길거리 낙서화로 유명세를 타던 바스키아를 만난다. 또 다른 낙서화가인 키스 해링과도 돈독한 우정을 쌓으면서, 이들은 1980년대 초반 미국 회화 붐을 이끄는 주역이 된다.

그러던 중, 콘도는 미국적인 팝아트 유행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시각 세계를 구축하고 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자 1983년에 유럽으로의 이주를 단행했다. 다시 뉴욕에 정착하기 전까지 10년 넘게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활발한 작업을 펼쳤다. 파리에서 그는 많은 유럽 예술가와 협업해 경험을 넓히는 한편, 당대 유명 철학자들과 교류하며 인문학적 틀을 닦는 데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중 미술 평론으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가타리(Flix Guattari, 1930~1992년)라는 프랑스 철학자는 콘도의 작품에 대해 다른 화가들과 구분되는 ‘콘도 효과’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도대체 어떤 점이 그토록 훌륭하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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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형태들(Nude and Forms, 2014년작)’. 2018년 5월 17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낮은 추정가의 세 배에 달하는 금액(620만달러, 약 73억원)에 낙찰돼 그의 전작 가운데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 작품이다.


가령 ‘누드와 형태들(Nude and Forms)’이라는 작품을 보라. 입체주의에 기반한 다양한 형태적 가능성에 대한 화가의 오랜 탐구 결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2m 크기인 이 그림은 2018년 5월 17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낮은 추정가의 세 배에 달하는 금액(620만달러, 약 73억원)에 낙찰돼 그의 전작 가운데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했다. 형태, 색채, 구성, 미술사 등 다각적 접근을 통해 상이한 모든 요소가 한꺼번에 공존하는 그의 포스트모던 성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980년대 당시에는 절친이었던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만큼 부각되지 못했으나, 20~30대에 단명한 그들과 달리 40여년에 걸친 끈질긴 회화 작업을 통해 그는 거장의 반열에 들어섰다.

다른 대부분의 콘도 그림처럼 이 작품도 여러 층 화면 위에 자신의 생각을 차곡차곡 쌓듯이 작업했다. 개개의 요소가 존재하면서도 묘하게 하나의 견고한 전체로 융합되는 콘도 그림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즉각적으로 그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는 소위 ‘신입체파(Neo-Cubism)’라 불리는 스타일이다. 그가 피카소와 브라크가 주도한 입체파 같은 유럽 모더니즘의 위대한 성취를 진지하게 수용하면서도 이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혁신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파스텔 톤 배경은 몽환적으로 처리돼 평범한 현실 세계로부터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전경의 인물들, 특히 화면 중앙 누드가 유혹적이고 요염한 자태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명확히 몸과 얼굴을 지니고 있음에도, 마치 배경을 그대로 투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배경인 것인가. 이처럼 투명성과 불투명성의 공존을 통해 콘도는 그녀에게 존재성과 동시에 비물질성을 부여한다. 또한 그녀의 몸과 얼굴은 각각 유기적·기하학적 형태를 하고 있다. 콘도는 의도적으로 한 화면에 추상과 구상, 존재와 비존재, 물질과 비물질 등 대립항의 공존을 꾀했다. 무엇을 말하기 위함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콘도는 입체파에 큰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모방에만 머물렀다면 결코 대가가 될 수 없는 법.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입체파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맞춰 완전히 새롭게 변형시켰다. 게다가 그가 참조한 것은 단순히 입체파만이 아니다. 중앙 여성 누드는 고전 그리스 로마 조각의 실루엣을 반영하고, 배경은 색채 톤으로 인해 모네 같은 인상주의의 하늘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과거 미술사와 여러 거장의 기법 참조는 그의 회화를 이루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러나 다양한 회화 요소를 하나의 화면에 축약하고, 완전히 새로운 역동성을 창조하는 방식은 온전히 콘도만의 것이다. 그는 화가면서 동시에 이론가로서, 보이는 대로의 재현이 아니라 마음에서 변형된 인위적인 것의 재현이라는 의미에서 ‘인위적인 사실주의’ 또는 희로애락의 복합적인 감정을 한 얼굴에 표현하는 자기 작품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심리적 입체주의’ 등의 용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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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광장 공원(Washington Square Park, 2010년작)’. 2018년 11월 15일 크리스티 뉴욕 이브닝 세일에서 높은 추정가를 웃도는 금액(약 480만달러, 약 57억원)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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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광장 공원’을 보라. 입체파, 초현실주의 등 여러 미술사적 요소를 수용하고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자신이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잘 표현한 작품이다. 광장을 메운 군중이 얽혀 있는데, 서로를 향한 시선이나 관객을 향한 강렬한 눈빛이 서늘하다. 악문 이빨, 눈살을 잔뜩 찡그리고 찌푸린 채다.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속에 피곤한 현대인들의 군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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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프턴족(The Hamptonites, 2004년작)’. 2019년 5월 25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600만홍콩달러(약 9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햄프턴족(The Hamptonites, 2004년)’은 추상으로 더 나아가기 전의 작품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여전히 삐죽 튀어나온 이빨, 일그러진 눈, 길게 늘어진 목 위에 안착된 기이하게 뒤틀린 얼굴 등 콘도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멋지게 차려입고 뉴욕 근교 유명 휴양지 햄프턴에 휴가를 온 커플이다. 이들은 정말 행복하기만 할까. 어느 순간 이 일그러진 괴물 같은 얼굴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처럼 다양한 미술사 참조에 미국적 팝 문화와 만화의 시각적 언어 결합을 통해 초상화 전통을 해체한 그의 새로운 초상화는 기이하지만 개성이 넘친다. 그의 돌연변이들은 복잡한 심상을 지닌 우리 현대인의 자화상 그 자체다. 이것이 바로 가타리가 말한 ‘콘도 효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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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67호 (2020.07.15~07.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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