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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분수대] W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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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 미국 상품을 더 많이 수입할 것이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인 경제적 자유도 수입하게 될 것이다.”

2000년 3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연설에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공식화했다.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 덕분에 이듬해 중국은 WTO에 입성했다. 하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예측은 틀렸다. 중국은 WTO가 보장하는 개발도상국 혜택을 활용하면서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섰지만, 미국의 대 중국 무역 적자는 꾸준히 늘었다. 미국의 오판이 중국을 키운 셈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경제적 자유란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끝내 수입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각종 명품은 물론이고 레고까지 중국산 짝퉁 상품이 세계 곳곳에서 팔리고 있다.

지난 2018년 본격화된 미-중 무역 전쟁도 WTO 체제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분석이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8년 7월 “미-중 무역 전쟁의 씨앗은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때 뿌려졌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지식재산권 보호와 기술 탈취 방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WTO 차기 사무총장에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등 8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당초 한국과 아프리카 후보의 대결로 치러질 것이란 예상이 많았으나 후보 접수 마감을 앞두고 영국도 후보를 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졌다. 일본 정부가 “WTO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 제대로 관여하겠다”고 밝히면서 한-일 힘겨루기 양상도 보인다.

모든 후보가 WTO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차기 사무총장은 가시밭길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WTO 핵심 조직인 상소 기구가 지난해 12월부터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WTO 상소 기구 위원은 정원 7명이지만 현재는 중국 출신 위원 단 한 명만 남았다. 무역 분쟁에 대한 최종 결정을 맡은 상소재판부를 꾸리기 위해선 위원 3명이 필요한데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절차상 하자 등을 이유로 2016년 5월부터 상소 기구 위원 선임절차를 거부하고 있다. 이면엔 중국 견제 심리가 깔렸다는 분석이다.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대원칙이 깨지고 ‘정글의 법칙’ 시대가 열렸다. WTO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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