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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매경춘추] 코로나19의 실버라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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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모든 구름에는 실버 라이닝(silver lining)이 있다." 짙은 구름이 해를 가려도 어둠이 걷히고 좋은 때가 돌아온다는 희망을 구름 한 구석 은빛 조각이 암시해준다는 표현이다. 며칠 전 구리 방향 강북강변도로를 주행할 때 오른쪽 전면에 나타난 봉우리들. 잠시의 의아함 끝에 깨달은 것은 늘 거기 있던 산이라는 것이었다. 매연과 미세먼지처럼 시야를 가리던 것들이 옅어지니 지근거리에 있는 것처럼 눈앞으로 훅, 다가온 것뿐이었다.

이처럼 세계를 전례 없는 피해와 희생으로 내몰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인간의 무기력이 길어지면서 자정자치(自淨自治)의 시간을 갖게 된 자연의 새삼스러운 아름다움, 사회적 거리 두기 끝에 접하게 된 '바깥'의 소중함, 가족·이웃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점을 꼽을 수 있다. 부·권력에 상관없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두려워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누구나 똑같다는 깨달음. 인위적 국경이 보호할 수 없는 이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연대해야 하는 공동운명체라는 자각이야말로 코로나19 먹구름이 안겨준 실버 라이닝은 아닐까.

역경의 기능은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거나 느슨하게 해 보다 나은 질서가 태동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국제연맹과 국제연합 모두 세계대전의 참화 끝에 등장했다. 초국가 정치력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 민간이 나섰다. 기아와 에이즈가 아프리카를 강타한 1985년, 구호기금을 마련하는 '라이브 에이드(Live Aid)'가 150개국에서 동시에 열렸다. 국제 저명 저널 네이처는 세계 전문가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 규명과 치료제·백신 개발에 공동 연대의식을 갖고 임해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또 백신의 혜택을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특허권 등을 공유하는 것이 인류 상생의 길이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의 정치질서가 팬데믹 이전과 달라졌을까. 방역의 기본인 마스크 착용마저도 정치 프레임으로 덧씌워 보수는 '노 마스크'를 고집하고, 진보는 그런 보수를 희화화한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다수 국가들의 백신 공유 호소에도 불구하고 개발 중인 백신의 국가 독점을 위해 정부가 선금을 건넨다.

리베카 솔닛은 역경이 비통과 파괴의 와중에 선의, 아량, 관용, 이타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역설을 인간에게 선사한다고 말한다. 이런 덕목이 꽃피우게 되는 것은 패권주의, 보호주의를 무기로 내세우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인'들의 연민과 자비심 덕분이다. 그러나 백신 문제는 우리나라의 '금 모으기'나 팬데믹 이후 동남아의 '쌀 나누기 운동'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제야말로 정부들이 백신 관련 지적 노하우 공유를 막아서는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하러 팔을 걷어붙일 때다.

[정호정 한국외국어대 영어통번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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