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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기자24시] 두 명의 잭슨, 트럼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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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역사는 현대문학이라는 말이 있다. 현대인의 정의와 도덕관을 반영해 역사는 다시 쓰인다는 뜻이다. 당대에는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인물이 현대의 정의를 상징한다며 부각된다. 반면 한 시대를 휘저은 인물이 오늘날 도덕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그 흔적이 지워진다.

지난달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본부 명칭을 '메리 W 잭슨 헤드쿼터'로 바꿨다. 메리 W 잭슨은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숨겨진 사람들)'의 실제 주인공이다. NASA 최초의 흑인 엔지니어였던 그는 우주 탐사에 탁월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제목 그대로 오랫동안 조명받지 못하고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억울한 죽음 이후 '흑인 인권'과 '인종 평등'에 대한 요구가 시대적 흐름이 되면서 그의 이름을 기리는 게 시대의 정의에 부합하는 게 됐다. NASA가 본부 이름을 바꾼 것도 그래서다.

반면 '잭슨'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사람은 정반대 상황이다. 앤드루 잭슨은 미국 7대 대통령을 지냈고 영국과의 전쟁에서 영웅으로 칭송됐다. 그러나 최근 미시시피주 주도인 잭슨시는 다운타운에 있는 그의 동상을 외곽으로 치우기로 했다. 백악관 앞 동상에는 시위대가 몰려들어 철거를 시도했다.

이는 그의 삶이 '인종차별 철폐'라는 현대의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앤드루 잭슨은 100명이 넘는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혹사했다. 군 복무 때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원주민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의 동상을 치운다는 건 이 같은 그의 삶을 역사에서 눈에 덜 띄는 곳으로 옮기려는 시도다.

건물의 이름과 동상이 바뀐다는 건, 지금 미국 역사가 다시 쓰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현대의 정의에 부합하는 인물이 역사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인물은 비중이 줄어들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바뀌면 지금 추세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앤드루 잭슨의 초상화를 집무실에 걸어놓고는 "미국 역사의 위대한 인물"이라고 했다. 잭슨의 동상이 치워지는 지금, 대통령으로서 트럼프의 시간도 짧아지고 있는 게 아닐까.

[오피니언부 = 권한울 기자 hanfenc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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