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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경제민주화`라는 우상과 그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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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코로나19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와중에 정부와 여당은 이번 가을 정기국회에서 강력한 반(反)기업 법안들을 대거 통과시킬 기세다. 감사위원 선임에 대주주는 지분을 3%밖에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반헌법적 법안에서부터 집중투표제, 부적격 이사 해임 건의권 등 주주행동주의적 법안이 주류를 이룬다. 삼성그룹만을 겨냥한 금융그룹 통합감독법도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분쟁이 발생하면 중소기업협회에 중재권을 준다는 우스꽝스러운 법안도 있다.

그러나 법안의 적절성이나 시의성 등에 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질 것 같지 않다. 집권당이 176석이라는 절대다수를 확보하고 상임위원장직을 독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법안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 문제를 소신 있게 제기할 야당 의원이나 언론이 별로 없다는 데도 큰 원인이 있다.

왜 이렇게 됐나. '경제민주화'가 좌우 정치세력을 아우르는 우상(偶像)이 돼 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는 만악의 근원을 재벌에서 찾는다. 1987년 정치민주화로 '정치독재'는 사라졌지만 '재벌독재'는 남아 있다면서 이를 '개혁'하는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이데올로기다. 현 정부의 핵심에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 주중 대사 등 경제민주화 시민운동을 하던 주역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뿐 아니라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포함시킨 주역이다. 그는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통합당에서 '개혁 전도사'가 돼 있는 김세연 전 의원은 당시 자유한국당에서 유일하게 '김종인표 상법 개정안'에 동참했다. 그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의정활동에서 이룬 가장 큰 업적이 경제민주화에 앞장섰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한국 사회에 폐해만 양산하고 있다. 원인 진단이 잘못됐기 때문에 대책이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실상을 보면 양극화는 재벌체제와 별로 상관이 없다. 재벌체제가 만들어진 경제 발전 기간 내내 한국은 대만과 더불어 개발도상국 중 분배가 괜찮았던 유이(唯二)한 나라였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에서 재벌의 세계적 성공이 확인된 1990년대에는 오히려 소득분배가 개선됐다. 소득분배가 나빠진 것은 어느 지표로 보든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강력한 '재벌 개혁'을 시행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빠졌다.

실제로 분배가 나빠진 중요한 이유는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한 데 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을 늘리면서 기업 돈을 빼내고 경영권을 흔드는 압력이 강해지니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별로 늘리지 못했다. 비정규직 문제도 이때 시작됐다. 다른 이유는 세계화에 속도가 붙는데 국내 투자 여건은 개선될 전망이 없고 해외 투자를 늘려야 했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도 주주자본주의 강화와 세계화가 맞물리면서 '1% 대 99%'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양극화 대책은 주주자본주의를 억제하고 국내 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뒀어야 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경제민주화 우상에 사로잡혀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하고 투자 여건을 악화시키는 대책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현실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 경제민주화에 적극 나서거나 반대 의견을 제대로 피력하지 않는 것은 국민 다수가 반재벌 정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정서를 활용하는 것이 표를 얻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거나 괜히 그 정서를 건드렸다가 표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상 숭배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설득하는 정치인이 나오는 것은 갈수록 신기루가 되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는 계속 망가지고 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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