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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삶과 문화] 조리법은 없다, 마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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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조영학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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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어느 매체에 1년 6개월간 요리칼럼을 실은 적이 있다. 말이 요리칼럼이지, 중년남자들이 집에서 쉽게 만들 만한 음식이 주 메뉴였다. 의뢰를 받아들인 이유도 요리보다 가족, 텃밭, 잡담 등 가벼운 일상 이야기가 중심이라는 얘기 때문이었다. 아내에게서 부엌을 빼앗아 살림을 전담한 지 15년이 훌쩍 넘었으니, 당연히 사연도, 할 말도 많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동안 육수도 모르던 중년남자는 어느 덧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수준이 준 고수급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직접 만든 음식들을 SNS에 올리며 자랑도 하기 시작했다.

“그거 어떻게 만들어요? 레시피 좀 알려 주세요.”

요즘은 예전과 달리 직접 요리에 도전하는 중년남자들이 늘고 있다. 쭈뼛쭈뼛 눈치만 보던 사람들이 내 음식 포스팅을 보고 용기를 내기도 했다. 고마운 일이다. 나처럼 삼시 세끼는 아니더라도 난 남자가 집에서 이따금 요리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야 집밥의 가치를 알고 밥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고 밥상 너머에도 사람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위한 밥상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들어간다.

“간장 찜닭 어떻게 만들어요? 나도 한번 해보게요.”

남자들이 물어오면 난 반가운 마음에 조리법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조각 닭을 깨끗이 씻은 다음 초벌로 데쳐 줘요. 데친 닭은 다시 찬물로 씻고, 물 2컵, 간장 반 컵, 올리고당 반 컵, 청양고추 3~5개, 당면은 1시간 전에 미리 불려놓고……” 우습게도 난 조리법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요리를 자주 한다면 모를까, 어쩌다 한 번 할 요량이면 아무리 조리법을 탐독해도 맛을 내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해보겠다는 마음이 기특하지 않은가.

조리법은 말하자면 약도 같은 것이다. 정작 약도를 들고 나서보면 이 골목도 헷갈리고 저 길도 비슷하게 보인다. 목적지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조리법도 그렇다. 가정마다 조리 도구가 다르고 양념 맛이 다르고 불의 강도도 다르다. 무엇보다 입맛이 다르다. 조리법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가족의 입맛에 어느 정도 가까워지려면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요리칼럼을 할 때 새롭게 시도하는 음식마다 미리 두어 번 연습을 해본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한 번 해보고 제대로 안 되면 “난 역시 요리에 소질이 없어” “에이, 그럼 그렇지, 남자가 무슨 요리를 해” 하고 지레 핑계를 대며 달아나는 경우다.

“저걸 배워서 나도 집에서 해봐야 하는데.” 누군가 이런 식으로 볼멘소리를 하면 나도 한마디 대꾸를 해준다. “요리는 배워서 하는 게 아니라 하면서 배우는 겁니다.” 정말이다. 한 번 해본 건 할 만큼 한 것이 아니다.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실패해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사실 요리만큼 전문적인 기술도 없다. 정작 부엌에 들어가 보면, 찌개만 해도 종류가 500가지이고 메뉴마다 시행 세칙이 5,000개다. 하나하나 육수 종류가 다르고 재료 속성을 살펴 조리에 투여하는 시간이 다르고 계절마다 식재료 보관 방법도 다르다. 조리법만 보고 한 번에 멋진 음식을 만들어내겠다고? 세상엔 훌륭한 요리책이 많지만 기필코 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면 조리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조리법보다 마음이 먼저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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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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