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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김두규의 國運風水] 사주·풍수·관상 드라마는 왜 실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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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이병주著 ‘바람과 구름과 비’

조선일보

경기도 여주의 안온한 길지에 자리한 소설가 이병주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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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이 주는 교훈과 재미(아리스토텔레스 ‘시학’)는 작가마다 다르다. 이병주(1921~1992) 소설이 그렇다. ‘지리산’ ‘관부연락선’ ‘행복어사전’ 등 대부분 장편이지만 젊은 날 밤새워 재미있게 읽었다. 초로(草露) 같은 인생이지만 그렇게 하찮게 살다 가서는 안 된다는 교훈도 얻었다.

이병주는 말한다. "人生不滿百 常懷千歲憂". 100세에 불과한 인생이나 천 년의 근심을 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병주가 지은 '바람과 구름과 비'(1977~1980년 조선일보 연재소설)는 사주·풍수·관상을 바탕으로 전개되기에 필자도 관심이 컸다. 소설 속 한시들을 필사하여 암기하였다. 앞에 언급한 한시도 이 소설에 나온다.

요즘 TV조선에 이 소설이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다. 필자는 '본방 사수' 하였지만 실망하였다. 주관적 실망이 아니라 시청률이 그것을 객관화한다. 5%대이다. 급기야 '미스터 트롯'의 주인공들(임영웅·이찬원)을 카메오로 출연시켜 시청률을 높이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사주·풍수·관상을 주제로 한 영화·드라마는 처음이 아니다. '대풍수' '명당' '궁합' 같은 작품들이 관객의 기대를 모았으나 미진하였다. 무엇이 문제인가? 제작진이 원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풍수·사주의 본질 또한 놓쳤기 때문이다.

'바람과 구름과 비' 속 주인공 최천중은 점술가로서 나라의 망조를 본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새 왕조의 왕으로 만들 야심을 품는다. 이를 위해 30년쯤 후에 왕이 될 사주를 꼽아보고, 그 사주에 부합하는 아이를 낳아줄 여인들을 물색한다. 감언이설로 겁탈하여 태어난 아이가 왕문(王文)이다. 동시에 그는 왕재(王才)를 기를 재물과 인재를 모은다. "그리하여 바람[風]을 만들고 구름[雲]을 만들어 그 풍운을 타고 용[王]이 등천"하는 것이 원작의 주제이다.

점술사 최천중은 사이비가 아니다. 그는 확신한다. "남의 점을 치기 전에 자기의 점을 쳐서 운명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점술이라야만 남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며,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작가 이병주의 확신이기도 하다. 사주와 풍수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믿음이 전제된다. 또 점술로 권력자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메커니즘을 알고 있었다(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내일의 운명을 가늠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생명과 지위를 보전하자니 자연히 사주와 풍수에 사로잡히는" 권력자들의 심리를 간파한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가상[家相]으로 권력자들의 운세를 읽고 그들에게 접근하여 재물을 취한다. 또 가구 배치·조명·공간 재조정을 통해 같은 집이라도 기가 달라짐을 이야기한다(미국 공사 루시엔 푸트의 집). 단골 음식점을 정하는 데도 풍수를 따진다. 어떤 음식점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래 왕국을 위한 길지를 삼전도(지금의 잠실)에서 보고 대규모 역사를 벌인다. 크게는 도읍지에서 작게는 인테리어까지 소설은 풍수의 구체성을 형상화하여 독자를 유혹한다.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드라마·영화가 실패한 이유는 이러한 술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최천중은 작가 이병주이기도 하다. 그는 풍수와 사주의 사회학적 기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죽어서도 그는 풍수를 버리지 않았다. 경기도 여주 비산비야(非山非野) 안온한 곳에 자리한 그의 유택은 풍수설과 부합한다. 이곳에 잠시만 머물러도 풍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사람은 그 땅의 성정을 닮는다’는 것이 이병주의 지론이다. 제작진이 이곳을 찾아 그 땅을 읽었더라면, 드라마는 소설만큼 인기를 모으고 시청률이 다섯 곱절은 되었을 것이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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