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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설왕설래] 정치인의 극단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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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사람은 고통이 극단에 이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이는 오랫동안 반사회적 행위로 치부됐다. 특히 중세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죄악시됐다. 그래서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은 묘지 매장을 거부당하고 그들의 재산은 국가나 봉건영주에게 몰수되기 일쑤였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생사를 좌우할 신의 권리를 부정했다는 이유로 갖가지 시신 모독의 형벌도 가해졌다. 19세기부터 학술적인 연구가 시작돼 오늘날에는 심리적, 정신의학적, 사회적 요인이 다양하게 반영된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은 83가지에 이른다. 그 동기는 무려 989가지에 달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자살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행위를 개인적 고통이 원인인 경우, 논개처럼 공동체를 위해 생명을 던지는 경우,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낙오되거나 적응하지 못한 경우로 구분하기도 했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한국에서는 대중 정치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도 잦다. 지난해 7월에는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2018년 7월에는 노회찬 당시 정의당 원내대표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수년 전에는 성완종 새누리당 의원, 안상영 부산시장, 박태영 전남지사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수사 대상이 된 뒤 거센 사회적 비판에 따른 심적 고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정치인의 특성상 견디기 어려운 압박에 직면했을 것이다.

서울시장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는 사상 초유의 비극이 발생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이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그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했기에 충격이 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에 대해 영국 작가 알프레드 알바레즈는 ‘자살의 연구’에서 “치명적으로 불발된 ‘도와달라’는 외침”이라고 했다. 반면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적어도 안이한 해결방식임에 틀림없다”고 했다. 박 시장의 비보를 접하고 이 두 말 모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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