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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박원순은 누구...인권변호사서 시민운동가, 민선 첫 3선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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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 신고된 지 7시간여 만인 10일 0시 20분께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시장이 지난 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판 그린뉴딜’ 기자설명회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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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임유진 기자 = 10일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64)은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서 민선 첫 3선 서울시장을 역임한 여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 중 한 명이었다.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시장은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에 입학했다.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진학했지만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학생운동에 단순 가담한 혐의로 4개월을 복역한 후 학교에서 제적 당했다. 박 시장은 훗날 “만약 감옥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냥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학점 관리하고 보통 사람처럼 살았을 텐데 감옥에 가는 바람에 내가 세상에 눈뜨고 시대의 중심에서 일을 하게 되고 사회와 나라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박 시장은 제적 다음해인 1976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 뒤 1980년 22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대구지검 검사로 임용됐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변호사로 전업했다. 개업 변호사가 된 박 시장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를 만나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권인숙 성고문사건과 미국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 등을 맡았으며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고 ‘생활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던 박 시장은 정신적 지주였던 조 변호사가 작고하자 영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또 다시 인생의 전환점을 겪게 된다. 박 시장은 1995년 참여연대를 설립해 시민운동가로 변신해 대기업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 권리찾기’ 운동을 벌이는 등 사회개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사법개혁운동과 낙선운동 등 한국 정치·사회를 뒤흔든 이슈를 제기했고 시민운동계의 대부로 평가받게 됐다.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 민선 첫 3선 서울시장

2002년에는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를 만들어 ‘소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기부와 모금으로 관심 분야를 넓힌 박 시장은 기부 받은 물건을 재가공해 수익을 기부하는 등 새로운 기부문화를 선보였다. 이후 2006년 시민참여 민간연구소 희망제작소를 설립해 시민운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시장은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던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가 박 시장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해 야권 단일 후보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으로서 반값등록금과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 청년수당, 도시재생, 사회적경제기업 협동조합, 원전하나줄이기, 노동이사제, 토건에서 복지 패러다임으로 전환 등 수많은 사회혁신 정책을 단행했다.

박 시장은 강한 추진력과 성실함, 시민과의 적극적인 소통 노력 등을 보인다는 호평을 받았다. 3선 시장의 경륜을 발휘하며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당선 직후 공공주택 공급과 전기차 보급·충전소 인프라 확충, 어르신 일자리 사업 확대 등의 부문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탈한 모습으로 시민과의 소통을 중시해 ‘친절한 원순씨’라는 별칭도 얻었다.

△경남 창녕 출생(1956년) △경기고 △서울대 법대 입학·제적 △단국대 사학과 졸업 △22회 사법시험 합격 △대구지검 검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참여연대 사무처장 △미국 스탠퍼드대 방문 교수 △아름다운 재단·가게 총괄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3선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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