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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연합시론] 파국 피한 검언유착 수사지휘 갈등…이젠 진실규명에 주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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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9일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서 손을 떼고 독립적 수사를 보장하라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를 결국 수용했다. 윤 총장은 문제의 채널A 관련 사건을 자체 수사하라고 서울중앙지검에 통보했다. 전날 기존 수사팀을 포함하는 '독립적 수사본부' 구성 내용이 담긴 절충안을 건의했다가 거부당하자 추 장관의 지시를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추 장관이 통보한 답변 시한을 불과 1시간여 앞두고 윤 총장이 수용 입장을 밝히면서 가까스로 파국은 면하게 됐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윤 총장이 측근 감싸기로 비칠 만한 행보로 수사지휘권 발동 사태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결자해지하는 건 당연하다. 전면전을 불사하고 악화하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했다면 검찰총장에 대한 초유의 법무부 감찰과 징계, 거취 문제로 이어지는 대혼란에 휘말렸을 게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윤 총장은 수사지휘 수용 입장을 밝히면서도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대검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이 박탈되는 바람에 사건을 지휘할 수 없게 됐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장이던 윤 총장이 직무에서 배제된 일을 상기하며 추 장관의 지휘가 부당하다는 점도 내비쳤다. 아울러 윤 총장의 절충안 건의가 사실은 법무부 제안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물밑 사전협의 과정까지 공개했다. 지휘 수용 입장을 접한 추 장관 쪽 반응도 썩 탐탁지는 않아 보인다. 추 장관은 공정한 수사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에 부합하는 것이라면서도 '만시지탄'이라는 말로 지연된 수용을 꼬집었다. 또 법무부가 독립수사본부를 먼저 제안하고 공개 건의를 요청했다는 대검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양측의 사전조율 과정을 둘러싸고 진실게임 양상을 보인 것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여기에다 윤 총장의 절충안 건의를 거부하는 내용이 담긴 법무부 입장문 초안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등 국외자(局外者)들에게 유출됐다는 논란까지 불거진 것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 입장문에는 '검사장을 포함한 현재의 수사팀을 불신임할 이유가 없음', '지휘권자를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다른 대안을 꺼내는 것은 공직자의 도리가 아님'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초안은 추 장관이 직접 작성했는데 내부 논의 과정에서 수위를 낮춰 실제로는 다른 내용의 입장문이 최종적으로 배포됐다고 한다.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은 입장문이 밖으로 새어 나간 건데, 법무부 설명으로는 초안과 최종안을 모두 취재진에 공개하라는 추 장관의 지시가 대변인실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소통 오류'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정작 대변인실은 최종안만 공개했는데, 일부 실무진이 모두 공개되는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초안을 미리 지인들에게 전달했고, 이것이 범여권 인사들 사이에 펴졌다는 얘기다. 최 대표는 초안을 담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30분가량 지난 뒤 곧바로 삭제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최민희 전 의원의 글을 복사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파장이 적지 않다. 대통령 연설문까지 손을 댄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 빗대어 '제2의 국정농단'이라는 보수 야당과 일부 논객의 격렬한 비판을 자초한 만큼 좀 더 설득력 있는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수사 주체와 지휘체계를 둘러싼 문제가 일단 정리된 만큼 추 장관과 윤 총장은 검언유착 의혹의 진상 규명을 위해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보장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문제와는 별개로 제보자 지모 씨에 의한 '함정 취재'에서 비롯됐다는 의혹이 있는데도 수사팀이 이와 관련한 수사는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이다. 윤 총장의 측근 보호를 위한 사건 뭉개기 의심은 물론이고, 반대로 특정 방향을 정해놓고 하는 수사도 국민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수사팀은 이런 점을 잘 헤아려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오직 진실만을 가려낸다는 자세로 철저히 수사하길 바란다. 아울러 법무부와 검찰은 국민에게 큰 불안감과 염려를 안겨준 이번 같은 힘겨루기와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이 굳게 닫힌 마음을 여는 게 첫걸음이다. 서로의 권한을 인정하고 빈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서는 관계 회복이 불가능하다. 정치권도 법적으로 2년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으로 비칠 수 있는 과도한 정치공세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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