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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고이케 재선으로 신설막힌 동경한국학교… 학생들은 '콩나물 교실'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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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건물 2동서 학생 1400명 생활… 공간 비좁아 지하에도 교실만들어

조선일보

가로 60m, 세로 50m의 동경한국학교 운동장. 이 작은 공간에서 1400명 초중고생이 번갈아가며 운동을 한다. /이하원 특파원


8일 일본 도쿄 신주쿠구 와카마쓰초에 위치한 동경한국학교 본관 지하층. 햇볕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지하의 다목적 교실 문을 여니,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쿄에 최근 계속해서 내린 비로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났다.

20여 개 책상이 놓여 있는 이 교실은 30㎡(약 9평)가 채 안 돼 보였다. 교실이 부족해 기존의 지하 회의실을 잘라서 만든 교실 중의 하나였다.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아이들의 정서를 고려해 여간해서는 이런 ‘지하 교실’을 만들지 않는다. 이 학교 학생들은 마치 고시 학원을 연상시키는 이런 작은 지하 교실에서 이동수업을 받고 있다.

◇ 운동장 협소해 축구는 절대 금지… 공 가지고 오는 것도 안돼

1400명의 초·중·고 한국 학생이 약 6000㎡ 부지의 2개 건물에서 생활하는 동경한국학교는 협소했다. 약 50㎡의 초등학생 교실은 책걸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한국은 이보다 더 큰 교실에서 30명 안팎이 수업을 받지만, 이 학교에서는 40명이 한 학급이다. 학교 부지는 절반에 불과하지만, 학생 수는 두 배 가량 많은 셈이다.

운동장 크기도 가로 60m, 세로 50m에 불과하다. ‘축구 절대 금지’가 학교 규정이다. 점심때에는 초등학생들이 25분가량 먼저 운동장을 쓴 뒤 중고생들이 나오게 돼 있다. 열악한 시설이지만 이 학교에 들어가기도 어렵다. 초등 과정의 경우 100명 이상이 대기 중이다. 동경한국학교의 곽상훈 교장은 “일반 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을 보면 늘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2014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나서서 ‘제2학교’ 결정났으나…

지난 5일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68) 도쿄 도지사의 재선 성공으로 그가 가로막은 제2 한국학교 설립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54년 개교한 이 학교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한국 교육법에 따라 가르치며 재일교포 사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아왔다. 부지가 워낙 작아 만성적인 과밀화 문제에 시달려오다 오공태 현 이사장(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이 주축이 돼 ‘제2의 한국학교’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2014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뜻을 전해듣고 서울을 방문한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도쿄 도지사에게 이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이후 도쿄도는 현재의 한국학교와 면적이 비슷한 구(舊) 이치가야 상고 부지를 유상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제2 한국학교 계획이 벽에 부딪힌 것은 우익 성향의 고이케 지사 때문이다. 2016년 도쿄 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그는 당시 현지 주민들이 반대한다며 ‘제2 한국학교 설립 계획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도지사에 당선된 그는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한국학교에 도유지(都有地)를 유상 임대하기로 한 결정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현지로부터 반대 서명도 있고, (부지를) 보육이나 고령자를 위해 써 달라는 요망도 있다”고 이유를 댔지만, 그가 속해 있는 극우 단체 ‘일본 회의’의 입김을 강하게 받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조선일보

본관 지하에 위치한 이동수업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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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일본인학교는 아무런 문제없이 이전했는데…”

고이케 지사 측의 ‘방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학교 측에서 운동장에 건물을 지으려고 했으나 유사시 ‘대피 장소’라고 못 건드리게 했다고 한다. 기존의 학교 건물을 증축하려고 했으나 이것도 규제에 어긋난다고 해 실현되지 못했다. 오공태 이사장은 “서울의 일본학교는 우리 정부와 서울시의 배려로 상암동의 최신 건물로 이전했는데 동경한국학교는 막혀 있는 상태”라며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는 서로 뜻을 모아야 하는데 양국 관계 악화로 더 어려워진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동경한국학교

1953년:이승만 대통령, 동경한국학교 설립지시

1954년:초중등 과정 학교로 개교

1991년:현재의 교사(校舍) 준공

2014년:박근혜 대통령, 日에 제2한국학교 설립 협조 요청

2016년:마스조에 도쿄도지사, 학교에 도유지(都有地) 유상 임대 결정 후 사임.

2016년 8월:고이케 도쿄도지사,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도유지 임대 결정 취소 발표

[도쿄=이하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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