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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필동정담] 19세기 대학, 원격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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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1년쯤 기간을 두고 동서양 고전 100권가량을 집중해서 읽을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뒤 하굣길에 생맥주 두 잔만 마실 것이다. 그때는 너무 적게 읽고, 너무 많이 마셨다. 학기 말쯤 강의실에 갔더니 이미 종강한 뒤였다. 지금도 그 악몽을 꾼다.

선배 하숙방 책장은 '폼 나는' 책들로 가득했다. 루이 알튀세르, 안토니오 그람시, 니코스 풀란차스, 미셸 푸코, 장 보드리야르…. 당시 유행하던 사상가들로 꾸며진 서가였다. '저걸 언제 다 읽나.' 콧대 높은 선배를 견제하기 위해선 유행을 뛰어넘는 접근이 필요했다.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은 궈모뤄의 '중국고대사상사',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그날 샀다. 유치한 동기였지만 안목은 쓸 만했다. 요즘 누가 알튀세르를 읽나. 클라우제비츠는 여전히 영감을 준다.

캠퍼스, 강의실, 도서관, 하숙집, 맥줏집…. 대학은 내게 온통 공간과 결부된 기억이다. 19세기 유럽 대학생과 다를 게 없다. 내년부터 사이버대학이 아닌 일반 대학에서도 거의 모든 학사 과정을 원격 강의로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원격 강의가 보편화될 10년쯤 뒤엔 캠퍼스도 강의실도 도서관도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지방 학생이 학교 인근에 하숙을 얻어야 할 필요도 없다. 대학 상권은 몰락한다. 이건 문명사적 전환이다. 1990년대 학번인 나는 대학 세대를 분류하자면 10년 후 대학생보다는 19세기, 어쩌면 13~14세기 대학생과 더 가까울지 모른다.

대학 도서관에 처음 간 날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곳에서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으며 중세 수도원 도서관 사서가 되는 공상도 했다. 원격 세대 대학생들은 오래된 책에서 뿜어 나오는 도서관의 달큼한 방향을 어디서 맡을 것인가. 하숙방 책장에 꽂힌 책의 무게를 놓고 신경전 펼칠 일도 없을 것인 바 알튀세르와 그람시에게는 누가 눈길을 줄 것인가. 하긴 지금도 누가 알튀세르를 본단 말인가.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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