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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삶과 문화] 삼손의 기묘한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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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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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강한 남자 삼손을 무너뜨렸던 ‘마타하리’는 블레셋 민족이 사주한 꽃뱀 스파이 델릴라였다. 그녀의 간교가 성공 요인이었지만 이보다 앞서 삼손이 허점을 보였다.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랑에 빠진 것이 죄는 아니지 않던가? 애석하게도 삼손에게 그녀는 사랑이었지만, 그녀에게 삼손은 '은 천백 개'의 돈이었다(사사기 16:4-5).

델릴라의 공세에 삼손은 세 번이나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네 번째에는 취약점이 재대로 찔렸다. “당신은 마음을 내게 털어놓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15) 남자의 어디를 건드려야 하는지 델릴라가 잘 찾았다. 사랑하면 보여 입증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절벽에서 점프도 마다 않는 남자의 허세를 잘 건드렸다. 삼손은 델릴라가 자기를 속이고 죽이려 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놈의 사랑 때문에 바보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도 비슷하게 곤욕을 치렀는데, 그때도 블레셋 여자였다. 이스라엘의 원수지만 삼손은 취향이 확실했다. 그녀와의 결혼 잔치에서 삼손은 수수께끼 문제를 내고 블레셋 사람들과 내기를 했다. 그들은 정답을 얻기 위해 삼손의 아내를 무섭게 협박했다. 그래서 “삼손의 아내는 삼손에게 울며 말하였다. 당신은 나를 미워할 뿐이지, 사랑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당신이 나의 나라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놓고도, 나에게는 해답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요.”(14:16). 사랑하면 입증하란다. 이렇게 7일을 졸라대자 삼손은 결국 답을 알려줬고 아내는 답을 누설하여 삼손이 내기에서 진다.

왜 삼손의 인생에는 여자와의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걸까? 왜 꼭 블레셋 여자하고만 섬싱이 있었을까? 흥미롭게도 삼손은 운명 자체가 블레셋을 치는 것이란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13:5).

그런데 방식이 독특하다. 먼저, 삼손이 블레셋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삼손의 부모가 왜 블레셋 여자를 아내로 맞느냐며 그를 타박했을 때, 성경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의 부모는, 주님께서 블레셋 사람을 치실 계기를 삼으려고 이 일을 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다.”(14:1-4). 그다음, 삼손은 늘 그 블레셋 여자 때문에 열받는 일이 생긴다. 내기에서 졌을 때 삼손은 분을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일은 점점 꼬여 장인이 사랑하는 아내를 그만 다른 남자에게 주어버린다. 뚜껑이 활짝 열린 삼손은 결국 블레셋 사람 수천 명을 죽인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삼손이 또다시 사랑에 빠졌는데, 블레셋 여자 델릴라였다. 이번에도 그의 연애는 같은 패턴이다. 사랑하는 블레셋 여인 때문에 곤경에 처하다가 블레셋을 치는 것으로 끝난다. 델릴라에게 비밀을 털어 놓은 후 삼손은 힘을 잃고 눈이 뽑힌다. 그리고 블레셋 군사에게 끌려가는데, 끌려간 덕분에 제대로 블레셋을 진멸한다. “그때에 삼손이 주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였다. 하나님, 이번 한 번만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여 주십시오!”(16.28). 마지막 힘으로 삼손은 성전의 기둥을 밀어 넘어뜨리고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자신도 죽는다.

본래 블레셋을 치라고 부여받은 힘을 삼손은 주로 여자에게 썼다. 여자 문제로 씩씩거리다 결국은 블레셋을 진멸한다. 자신도 함께 죽어야 했다. 미션은 달성했고 죗값도 치렀다. 원수를 치는 것이 운명인 남자. 그런데 늘 원수의 여인과 연애를 했던 남자. 그 연애로 인한 복잡한 인생사에 분이 차서 결국 원수를 진멸하는 운명의 남자. 성경의 이 텍스트에 초대된다면 당신은 어떤 읽기와 해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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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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