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소녀상 주변 수요시위·반대집회 전면 금지로 새 국면
(서울=연합뉴스) 지난달 24일부터 서울 종로구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여러 단체가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소녀상 앞은 원래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의 수요 시위가 열렸던 곳인데요. 최근 보수단체인 자유연대가 그 장소를 선점했습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정의연은 소녀상과 10m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에 무대를 만들고 시위를 진행하게 됐는데요.
최근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 신고하며 정의연은 이 자리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된 상황일까요?
◇ 왜 소녀상앞은 대치 중인가?
첫 수요시위는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열렸습니다.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회원 30여명이 1월 8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는데요. 이후 수요시위는 지금까지 28년간 지속됐습니다.
소녀상 주변에서 이어지는 대립 상황 |
그러나 자유연대가 지난달 23일 자정부터 이달 중순까지 매일 수요시위가 열리던 장소에 집회 신고를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집회를 신고한 이희범 자유연대 대표는 "정의연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집회를 중단해야 한다"며 "그게 아니라면 시민들이 두 집회를 보고 과연 누가 상식이 있는 자들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나아가 정의연이 각성하고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사퇴할 때까지 일본대사관 앞 집회 신고를 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자리 뺏긴 수요집회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집회 시작 최장 30일 전부터 경찰에 신고서를 낼 수 있는데요. 장소가 겹칠 경우 조율이 가능하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단체가 대립하게 되는 경우 조정의 여지는 줄어들게 됩니다.
결국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 정의연. 원래 장소 대신 남서쪽으로 10m가량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시위를 계속하게 됐는데요. 그러나 이마저도 불투명해졌습니다.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가 이달 29일 수요일,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역시 정의연의 수요시위 중단과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는데요.
◇ 이 사태의 발단은?
자유연대가 집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5월 7일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참가한 학생들이 낸 성금은 어디 쓰는지도 모른다"며 윤미향 의원(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에 직격탄을 날리며 시작됐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추모의 날 참석한 이용수 할머니 |
5월 15일에는 기부금 유용 의혹 등과 관련해 시민단체들이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을 고발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는데요. 윤 의원은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의 관리를 아버지에게 맡기고 지난 4월까지 6년여간 7천여만원을 지급해 온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안성 쉼터를 시세보다 비싼 값에 매입한 뒤 최근 손해를 보고 팔았다는 주장과 마포구에 이미 쉼터를 마련했음에도 석연찮은 과정을 거쳐 안성 쉼터를 조성했다는 것이 추가 의혹으로 제기됐는데요.
5월 20일에는 윤 의원이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 무릎을 꿇고 사과하자 이 할머니가 '(윤 의원이)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지만, 같은달 25일 열린 2차 기자회견에서 이 할머니는 "사리사욕을 채워서 마음대로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나갔다"고 윤 의원을 또다시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지난달 7일에는 검찰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인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지 보름여 만에 소장 A씨가 자신의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요. 검찰은 정의연 관계자와 주변인들을 최근 줄줄이 소환하면서 회계 부정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 소녀상이 만들어진 배경
평화의 소녀상은 수요집회 1천회를 맞아 시민 모금으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습니다(2011년 12월 14일). 의자에 앉아 단발머리를 한 소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평화의 소녀상은 이후 국민 모금 등으로 전국 각지와 해외에도 세워졌습니다.
'지켜보겠습니다' |
지난달 24일.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수요시위의 마지막 순서인 '경과보고'를 통해 수요시위의 '장소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는 28년 동안의 시위가 '피해 생존자들의 고통과 아픔, 상실감과 좌절감이 얽혀있는 자리', '낙인과 배제, 고통과 죽음을 이겨낸 존엄과 생명의 자리'였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한 "밀려나고 빼앗기고 탄압받고 가슴이 찢기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며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은 누구?
계속된 자리다툼 한편에서는 시위를 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학생단체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소속 대학생들입니다. 지난달 23일부터 소녀상에 자신들의 몸을 묶고 연좌시위에 들어갔는데요. '소녀상을 지키자'는 구호를 외치며 농성 중입니다.
사진/ 반아베반일 청년학생공동행동 페이스북 |
이들은 2015년부터 '한일합의폐기'를 외치며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3월 1일. 2기가 출범했는데요. 그리고 올해 5월 16일 한일합의폐기와 소녀상 철거반대를 외치며 농성을 한 지 1천600일이 지났습니다.
이들은 일본군성노예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소녀상을 지켜왔습니다. 또한, 지속해서 철야농성을 하거나 SNS를 통해 극우단체의 만행을 고발하는 등 일명 '소녀상 지킴이'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인데요. 나아가 아베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투쟁 중 입니다.
◇ '자리싸움'은 언제 끝날까?
윤미향 의원의 각종 의혹들로 촉발된 소녀상을 둘러싼 '자리싸움'.
수요시위를 주관한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는 성명서에서 "이 시간 행해지는 반대 집회를 보면서 경악과 참담함을 금치 못한다"며 "수요시위의 의미와 중요성을 더욱 되새기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반면 자유연대는 '언제까지 일본대사관 앞 집회 신고를 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의연이 각성하고 윤미향 의원이 사퇴할 때까지"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는 이날 오전 0시부터 감염병 위기경보 '심각' 단계가 해제될 때까지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일대 집회·시위 등 집합행위를 금지했습니다. 집회금지 장소에는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 소녀상도 포함돼 있는데요.
이에 정의연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고, 자유연대는 "당분간 집회는 열지 않되 만약 정의연 등이 집회를 강행하거나, 당국이 이를 방조할 경우 관계자들을 다시 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는데요.
각종 비리 의혹을 받는 윤미향 의원의 사퇴와 사법처리를 주장하는 보수단체와 이들의 공격을 친일 세력의 음해라고 주장하는 진보단체의 한 치 양보도 없는 극한대립이 이어지며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
매주 수요일마다 평화의 소녀상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두 진영의 극한대립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수십년 동안 위안부 운동을 이끌어온 정의연의 도덕성이 의심받으면서 빚어진 이런 혼란상을 과연 당사자들이 원만하게 풀어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전승엽 기자 김정후 인턴기자
kir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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