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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제주 변호사 내가 죽이라 했소” 21년만의 고백,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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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살인교사범 등장에 사건 진실찾기 수사 착수

진범.청부 배후 등 풀어야 할 숙제

1999년 11월 5일 오전 6시 48분. 제주시 제주북초등학교 북쪽 옛 체신아파트 입구 삼거리. 기온이 10도까지 내려간 쌀쌀한 가을 날씨였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자 도로에 주차된 소나타와 그 주변에 선명한 핏자국이 드러났다. 이 곳을 지나던 한 주민이 불길한 예감이 스쳤는지 조심스럽게 차 안을 들여다봤다.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승용차 안에는 한 남성이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에

고개를 숙인 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그는 이승용(당시 44세) 변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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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이 변호사 사건현장인 제주시 삼도동 도로변에 쓰레기 분리배출 시설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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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119 구급대가 도착해 보니 이 변호사는 예리한 흉기로 가슴과 배를 3차례나 찔리고 왼쪽 팔꿈치 부분은 흉기에 관통당한 상태였다. 운전석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고, 운전석 밖 도로 바닥에도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경찰 “사망원인은 과다출혈…계획적 범죄”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심장 관통에 의한 과다출혈이었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흉기에 6곳을 찔린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변호사가 차량 밖에서 괴한의 흉기에 찔렸고, 이를 피하기 위해 차량 안으로 들어와 운전대를 잡으려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변호사의 오른 손에 차량 열쇠가 쥐어져 있었던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경찰은 계획적인 범죄로 판단했다. 국과수 감정결과 범행에 사용된 흉기는 일반 가정이나 음식점 등에서 쓰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 예리한 흉기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계획적인 범행인 것을 뒷받침했다.

범인은 이 변호사의 급소인 가슴(심장) 부분을 찔렀고, 배와 팔을 난자했다. 처음부터 죽이려고 작정했다고 봐야 한다. 범인이 노린 것이 돈이었다면 현금이 든 지갑 등을 노렸어야 하는데, 현금이 든 지갑과 소지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기에다 승용차 안과 차를 세워둔 부근까지 피가 흥건한데도 범인은 발자국하나 남기지 않았다. 철저하게 계획된 범행으로 보는 이유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도심지 한복판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제주출신인 이승용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24회에 합격해 검찰에 입문했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 추미애 법무부장관, 홍준표 국회의원 등과 사법시험 동기다. 그는 서울지검과 부산지검에서 검사생활을 한 다음 1992년 고향인 제주로 내려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제주 경찰은 사건 현장 인근의 중앙지구대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7개팀, 40여 명으로 수사본부를 꾸렸다. 경찰은 이 변호사가 변호사인 점을 감안해 처음에는 수임 사건에 대한 불만이나 원한관계에 의한 살해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살인 전과 등 용의선상에 오른 60여 명을 상대로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하거나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모두 제외됐다.

◇경찰 수사 1년만에 수사본부 해체…2014년 11월 공소시효 만료

사건 당일 이 변호사는 친구와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발견 당시 이 변호사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88%.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경찰은 새벽 3시 10분쯤 제주시내에 있는 카페 여종업원에게 “찾아 가겠다”며 3차례 전화한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해당 여종업원은 “피곤해서 그냥 들어가겠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귀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사망 추정시간인 새벽 5~6시까지 2시간여 동안의 행적은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면 용의자가 좁혀지고 특정해야 하는데 사건은 점점 난항을 거듭했다. 사건 현장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족적 등 단서가 될 만한 어떤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목격자도 없었다. 심지어 사건 현장에는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다급해진 경찰은 1만 장의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했다. 현상금 1000만원도 내걸었다. 반상회까지 열어 주민들에게 전단지를 배포하면서 목격자를 찾았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결국 1년 뒤 수사본부는 해체됐고, 6000여 쪽의 사건 기록만을 남겼다. 이 사건은 아무런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2014년 11월 5일 자정을 기해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2007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살인죄 공소시효는 15년에서 25년으로 늘어났지만, 이전의 살인사건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제주 변호사 살인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지 6년 만이다. 자신이 살인을 교사했다고 주장하는 사건 관련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자신을 과거 조직폭력배 ‘유탁파’ 조직원으로 소개한 김모(54)씨는 자신이 이 변호사의 살인을 교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조폭 두목의 지시를 받고 조직원 중 한 명에게 이 변호사의 살인을 교사했다는 내용이었다. 범행은 부산 출신으로 ‘갈매기’라 불리는 동갑내기 조직원 손모씨(2014년 사망)가 맡았다고 했다.

당초 두목은 다리를 찔러 겁을 주라고 했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 직접 행동에 나선 갈매기가 피해자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살해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방송에서 김씨는 범행에 사용된 유사한 모양의 흉기를 직접 그려서 보여줬다. 또 이 변호사의 이동 동선은 물론 골목의 가로등이 꺼진 정황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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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호사 살인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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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경찰은 방송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재수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제주경찰청 관계자는 “이 변호사 살인사건이 공소시효 만료로 범인을 잡더라도 처벌할 수 없지만,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재수사하기로 하고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며 “경찰에 직접 제보한 것은 아니지만 방송내용 중 일부가 의미 있다고 보고 제보자와 접촉해 사실관계를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부 배후·범행 이유 등 궁금증 증폭

그렇다면 해외에 체류중인 김씨가 자신을 21년전 사건의 ‘살인교사범’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진실인지, 진실이면 청부 배후가 누구인 지를 둘러싸고 의문이 증폭하고 있다. 또 그가 잊혀져 가던 사건을 들춰내며 스스로 세상에 드러낸 이유는 무엇인지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일단 경찰은 김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김씨가 두목의 지시에 의해 손씨에게 범행을 교사한 것이 아니라 직접 이 변호사를 살해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씨 주장과 달리 범행 지시가 이뤄진 1999년 10월 두목 백씨는 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다. 살인을 했다던 손씨는 1998년 8월 연동에서 강도사건으로 수배중이었다. 실체를 밝혀줄 손씨는 ‘이 변호사 살인사건’ 공소시효를 두달 앞둔 2014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공교롭게도 두목 백씨 역시 이미 고인이 됐다.

김씨는 방송에서 차량으로 미행하던 중 1999년 11월 5일 새벽 3시쯤 카페에서 나오는 이 변호사를 기다린 점, 골목 가로등의 꺼진 정황, 일반적인 칼이 아니라 송곳처럼 끝은 뾰쪽하지만 단단한 재질로 만든 흉기를 직접 그려서 보여준 점 등 21년 전 누구도 알 수 없었던 당시 범행현장을 세세히 묘사했다.

전문가들은 김씨가 자신의 책임을 줄이기 위해 친구 갈매기를 살인사건 범인으로 각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방송에서 표창원 교수는 “순수하게만 볼 수 없다. 공소시효가 완료됐고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인한 뒤 나오는 제보다”라고 말했다. 표 교수는 “갈매기가 했다는 상황이 갈매기를 빼고 제보자를 넣으면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수정 교수도 “21년 전에 갈매기로부터 들은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경험한 것이 아니면 이렇게 디테일하게 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전문가들은 청부 배후와 왜 ‘살인교사범’으로 자신을 드러냈는지는 연결돼 있다고 봤다. 김씨를 아는 지인들은 그가 마약과 도박에 빠져있고, 그에게 돈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자신에게 살인교사를 지시한 사람에게 경고를 보내고 지원하게끔 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보를 택했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방송이 나간다면 청부한 사람은 위기를 느낄 것이라는 것이다.

김씨의 진술로 이 사건의 퍼즐조각은 드러났고, 그것을 맞추고 완성하는 것은 경찰의 몫으로 남았다. 1999년 당시 아홉 살이던 고인의 아들은 어느덧 서른이 됐다. 공소시효는 지나 범인을 찾더라도 처벌할 수 없지만 고인의 원혼을 달래고 유족의 한을 풀어주는 유일한 길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오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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