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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제갈량의 초옥을 세 번 찾은 유비와 스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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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민준 변호사 ] [편집자주] 게임과 무협지, 삼국지를 좋아하는 법률가가 잡다한 얘기로 수다를 떨면서 가끔 진지한 내용도 말하고 싶어 적는 글입니다. 혼자만의 수다라는 옹색함 때문에 약간의 법률얘기를 더합니다.

[the L][남 변호사의 삼국지로(law)]⑰


제갈량의 초옥을 세 번 찾은 유비와 스토킹

三顧草廬.

유비가 제갈량과 함께 하기 위해 세 번이나 제갈량의 초옥(초가집)을 찾아 정성을 보였고 이에 감동한 제갈량이 유비를 섬기기로 했다는 얘기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인데 현재는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 정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은나라 시대에서 탕왕이 삼고지례의 예로 인재를 영입하였다는 내용이 있으니 반드시 유비가 위와 같은 행위를 최초로 하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대와 상관 없이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를 영입하려 하였다면 당연히 정성을 다했을 테니.)

그런데 여기서 방문을 받게 되는 사람의 마음과 방문을 하려는 사람의 방문 횟수를 현재의 상황과 함께 고려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위와 같은 행위가 ‘상대방에 대한 지속적인 괴롭힘(스토킹)’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인재를 영입한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성에 대한 호감, 과거 연인에 대한 집착, 피해자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의 감정 등을 원인으로 행위자가 상대방의 거절의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 행위는 스토킹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토킹이라는 행위는 결국 성폭력, 상해, 살인, 감금 등의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현재 경범죄처벌법이 유일하게 스토킹에 관해 규정하고 있지만(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행위의 위험성이나 피해자의 피해 정도, 행위의 상습성 등을 고려하면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는 지나치게 가볍습니다.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여전히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 합니다’, ‘날 버리고 떠난 배우자에게 이유라도 들으려고 그랬습니다’, ‘억울해서 왜 날 고소했는지 물어 보려고 그랬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위와 같은 핑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성간의 애정문제에 법이 개입할 수는 없어서’라거나 ‘얼마나 사랑했으면’이라거나 ‘얼마나 억울했으면’이라는 마음으로 스토킹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한 사건에서 스토킹으로 인한 중한 결과 발생의 위험성, 삶이 황폐해질 정도의 피해 등을 고려하면 이제 스토킹을 중대한 범죄행위로 보아 그에 합당한 처벌을 고려하여야 때입니다.

속칭 ‘스토킹처벌법’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는 스토킹에 대해 어떤 근거로 적절한 처벌을 할 수 있을까요?

① 스토킹이라는 행위가 ‘지속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상습범 가중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형법상 폭행, 상해, 체포, 감금, 협박, 강간 등의 죄에는 상습범을 가중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스토킹의 행위형태 중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명예훼손이나 주거침입에 관해서는 상습법 가중규정이 없는데 이 점에서도 ‘스토킹처벌법’이 시급합니다.)

스토킹 행위자에게 동종 범죄전력이 없는 경우에는 상습법 가중에 의하지 않으면 초범임이 양형사유로 고려되어 벌금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상습범 가중이 스토킹에 대해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② 휴대전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음란한 사진을 보낸다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처벌 할 수 있습니다.

③ 자신을 고소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스토킹을 하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으로 고소했던 피해자를 찾아가 폭행, 상해, 체포, 감금, 협박에 해당하는 행위로 피해자를 괴롭히는 경우에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토킹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행위의 형태를 생각해 앞서 적은 몇 가지 처벌근거를 적어 보았습니다.

조속히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되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라면 행위자의 행위가 스토킹에 해당하고 재범의 위험성이 크고 중한 결과 발생의 위험성이 상당한 것으로 인정된다면 앞서 열거한 몇 가지 법률규정이라도 당해 사안에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스토킹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비요? 제갈량이 거절하지 않았으니 스토킹이라고 할 수는 없죠!)
머니투데이



남민준 변호사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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