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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지자체·시민단체 "6·17대책 서민만 피해"… 지지세력도 등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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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들끓는 부동산] [21번의 실패] [1] 끊이지 않는 '6·17' 잡음

지난달 30일 인터넷 포털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617소급위헌'이라는 단어가 올랐다. 6·17 대책의 대출 한도 축소 등으로 피해를 보게 된 사람들이 만든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가 개설 열흘 만에 회원 수 8000명을 넘기며 검색어 순위를 밀어올렸다. 당초 비규제지역이었다가 6·17 대책으로 규제지역이 된 인천에서는 서구·연수구·남동구 등 기초자치단체들이 서민에게 피해가 오는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잇따라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책의 부당함을 비판·호소하는 글이 100개 넘게 올라왔다.

◇허술한 대책에 등 돌린 민심

6·17 대책은 실수요자나 시장에 미칠 영향은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집값을 잡겠다는 정치적 목적에만 매달려 대증(對症) 규제를 쏟아낸, '부동산의 정치화' 결정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민까지 투기꾼으로 몰아가는 듯한 무모한 규제가 누적되며, 내 집 마련이 막힌 실수요자와 전셋값 오른 임차인들의 분노가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급기야 친여(親與) 성향 시민단체와 여당 소속 지자체장까지 정부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랴부랴 공급 확대 등 보완 대책을 지시했지만 "규제밖에 할 줄 모르는 정부는 믿을 수 없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넘쳐나고 있다.

조선일보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매 시세표가 빼곡히 붙어 있다. 경실련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52%나 올랐다.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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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입법 1순위'로 강조한 종합부동산세 인상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많다. 문 대통령이 주문한 종부세법 개정안에는 1주택자, 조정대상지역 외 2주택자처럼 투기 수요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의 세율도 일부 인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장 안정보다 세수 확보가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올 만큼, 집값 안정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보유세 인상은 잠깐 집값을 묶어둘 순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게 학계 의견"이라며 "영국·미국 등 보유세가 높은 선진국에서도 최근 집값이 폭등하는 사례를 보면 결국 집값을 움직이는 건 수요와 공급이고, 해결책도 이 원리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多)주택자들의 지방 주택 처분,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심화하고, 서울 강남 등 인기 지역의 전·월세 가격 상승 등 부작용 우려도 나온다.

◇"아파트가 유물이냐, 발굴하게"

주택 공급 확대를 주문하며 문 대통령이 했던 "발굴을 해서라도 늘리라"는 발언에 조롱 섞인 반응까지 나온다.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아파트가 발굴 대상이라니 유물이냐" "한강 간척 사업이라도 하려느냐" "3기 신도시 터도 안 팠는데 4기 신도시가 나오나" 등의 글이 올라왔다. 서울 아파트를 가장 빠르게 공급할 방법인 재건축·재개발은 여전히 옥죄면서 대규모로 주택을 공급할 묘안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서울에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미 동원했다. 지난 5월 용산 철도정비창 터에 8000가구 규모 미니 신도시를 짓기로 했고, 공공 재개발로 2만 가구를 내놓겠다고 했다. 도심 내 노후 주민센터, 주차장 터 등 자투리땅을 활용한 수십~수백 가구 규모 공급 계획까지 이미 다 내놨다.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공급 대책 중 상당수는 청년·신혼부부 대상의 임대주택인 데다 핵심 입지는 많지 않아 시장 수요를 감당하기엔 부족하다"며 "서울시의 반대를 뚫고 그린벨트를 해제하거나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정책 기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주택 공급 부족 불안을 잠재우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부작용만 키운 21번의 대책

정부가 부작용 우려에도 설익은 부동산 대책을 밀어붙이며 국민의 불신과 혼란을 키운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다. 2017년 '8·2 대책'에서 다주택자 양도세를 중과하자 다주택자들이 지방 집을 팔고 서울로 몰려들면서 서울과 지방 간 양극화가 심해졌다.

지난해 '12·16 대책'에서 정부는 투기 수요를 막겠다며 15억원 초과 주택의 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했지만 "대출 끼고 집 사는 실수요자만 규제하고, 현금 부자와 갭투자(전세 안고 집 사기)자는 방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도입 가능성이 언급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의 경우, 아파트 공급 감소 불안감을 부추겨 기존 집값을 오히려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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