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제기·고소·진정서 제출… 아무런 조치 없어 / 극단적 선택 전날에도 인권위에 진정 / 故 최 선수 지인 "별일 아닌 듯 취급 받아 더 힘들어 해" / 해당 감독 "팀닥터 폭행 말렸다" 폭행 부인
지난 2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황성동에 있는 경주시체육회 사무실에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감독(왼쪽)이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하루 전에도 국가인권위원회에 사건을 진정하며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선수는 수 차례 정부와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3일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따르면 최 선수 가족의 법률대리인은 지난달 25일 가혹행위 등과 관련한 진정을 인권위에 냈다.
최 선수 측은 지난 2월에도 인권위에 진정서를, 경주시에 민원을 각각 제기했다. 3월에는 형사절차를 밟기 위해 인권이 진정을 취하하고, 수사당국에 고소했다. 4월엔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6월엔 대한철인 3종협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특별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최 선수 사망 후에야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윤희 제2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조사단을 구성했다. 대구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양선순)도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아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북 경주시체육회도 진상조사에 나섰다.
경찰의 가혹행위 조사를 받은 뒤 최 선수는 더 낙담했다고 유족들을 전한다. 경북 경주경찰서는 지난 3월11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으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았다.
최 선수의 지인과 유족들은 경찰의 사건 수사 당시 최 선수가 오히려 죄인 취급 등을 당해 심적으로 많이 괴로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선수의 한 지인은 “고인이 경찰, 스포츠인권센터를 찾은 것은 엄청난 용기였다”며 “그런데 경찰에 가서 진술하고 조사 받는 과정에서 숙현이가 제기한 그런 문제들이 별일이 아닌 듯한 취급을 받아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경주경찰서 관계자는 “사건을 이첩받은 후 수사에 착수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관련자들을 바로 불러 조사를 할 수 없었다”며 “현재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경찰 조사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알려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의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부산의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고 최숙현 선수의 생전 모습. 고 최숙현 선수 가족 제공 |
2017년과 2019년 경주시청 소속 트라이애슬론팀에서 활동한 최 선수는 A감독과 팀닥터 B씨, 선배 등으로부터 가혹 행위를 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체중이 늘었다는 이유로 새벽에 빵 20만원어치를 억지로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고, 복숭아 1개를 몰래 먹었다는 이유로 뺨을 20회 이상 맞고 가슴·배를 차이는 등의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팀닥터 B씨가 금품을 요구한 의혹도 있다. 경주시는 B씨를 고발하고 팀해체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편, 최 선수가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한 경주시청 A 감독은 과거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가 뒤늦게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경주시체육회에 따르면 전날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A 감독은 “나는 폭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팀닥터의 폭행을 말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5개월 전 A 감독은 최 선수 아버지에게 “염치없고 죄송하다. 무릎 꿇고 사죄드린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내가 다 내려놓고 떠나겠다”고 사퇴 의사까지 밝혔다.
경주=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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