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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주머니에 있다"던 집값대책 배신···文지지자도 "文 말 안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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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2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부동산 대책 관련 긴급보고 받았다.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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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직장인 양모(35)씨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였다. 그는 “부동산 가격을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취임 초 말을 믿었다. 양씨는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아파트를 사는 대신 전세를 택했다.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판단도 있었지만, 정부 대책이 효과를 볼 거라고 봤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친구들과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그때 샀어야…”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투기와의 전쟁? 이제 대통령 말 안 믿는다”라고도 했다.



①“강력한 대책, 주머니 속에 많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시작은 박근혜 정부에서 풀린 규제를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2017년 5월 정부 출범 다음달에 6·19 대책이 나왔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10%포인트씩 낮춰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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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회원들이 1일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 청와대 다주택 공직자의 주택처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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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그해 7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들과 대화’에서 구본준 LG 부회장이 직원들에게 피자를 돌린 이야기를 하자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부동산 가격을 잡아 주면 제가 피자 한 판씩 쏘겠다”고 했다. 부동산 문제를 갖고 농담을 던질 정도로 문 대통령은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그 자신감이 선명하게 드러난 게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이 역대 가장 강력한 대책”이라고 했다. 기자회견 보름 전에 발표된 8·2 대책을 말하는 것이었다.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것으로 부동산 가격을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또다시 (부동산 가격이) 오를 기미가 보인다면 정부는 더 강력한 대책도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을 향한 경고였다.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있다"라는 말처럼 정부는 이후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 11·29 주거복지 로드맵 등 거의 매달 관련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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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가격과 대통령 발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②“보다 강력한 방안”



하지만 시장은 예상과 달리 흘러갔다. KB 주택가격 동향 통계를 보면, 2017년 말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보다 12.8% 올랐다. 2016년 1년 통틀어 10.2% 올랐는데, 새 정부 출범 7개월 만에 그 수치를 뛰어넘었다.

2018년은 더했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19.2% 상승했다. 전국 아파트 가격 상승률(7.7%)도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한국감정원의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주택가격 상승률은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최고 상승치를 기록했다.

여권에선 ‘노무현 트라우마’가 번지기 시작했다. 더 강력한 규제책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주택담보대출을 최대한 억제하는 9·13 대책이었다. 부동산 값이 잡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3040대 사이에서 “집값은 올랐는데 대출까지 막아 집을 더 살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꺾일 듯 보이던 집값도 이듬해 초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즈음 문 대통령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부동산 이슈를 꺼내지 않았다. 2018년 11월 시정연설에서도 경제와 관련해선 “포용 국가”, “경제 불평등” 등만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다시 부동산과 관련해 입을 연 건 2019년 11월이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시민의 질문에 “현재 방법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한다면 보다 강력한 여러 방안을 계속 강구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입증하듯 다음달 12·16 대책이 나왔다. 15억원 이상 주택을 구입할 때는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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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와 부동산 정책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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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투기와의 전쟁”



숱한 부동산 규제책에 대한 내성이 생긴 탓인지 12·16 대책에도 집값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풍선 효과로 수도권 외곽과 지방 등의 부동산이 덩달아 올랐다. 그러자 올해 1월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결연해졌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절대 지지 않는다.” 또한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들은 원상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의지와 달리 부동산값은 여전히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정책이 정확한 현실 인식에 기반을 둔 것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과학원장은 “투자와 투기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좀 더 입지가 좋은 곳, 집값이 오를 곳에 집 사려는 실수요자도 투기꾼인가”라며 “지금 서울 집값이 뛰는 것은 공급이 부족해서인데 대통령은 ‘투기’ 등 수요 요인만 말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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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사전에 질문자를 정하지 않고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하려고 손을 든 기자를 지목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108분간 문답 형식으로 진행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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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전문가인 김현아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은 “문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을 팩트(사실)로 보고 있지 않으니 잘못된 대책, 잘못된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시장에 대해 잘못 판단한 사례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엔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만큼 안정돼 있다”고 했고, 올 1월엔 “지난번 부동산 대책(12·16 대책)으로 지금 부동산 시장은 상당히 안정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대비 올 1월 아파트 중위가격 상승률을 보면 전국(2.7%)과 서울(4.2%) 모두 안정된 상황은 아니었다. 게다가 올 1월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처음으로 9억원을 넘어섰다. 김 비대위원은 “문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을 시장으로 보는 게 아니라 여전히 이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일 결국 주택 공급 물량 확대를 당부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주택시장 동향과 대응 방안을 보고받은 뒤 “정부가 상당한 물량의 공급을 했지만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으니 발굴을 해서라도 추가로 공급 물량을 늘리라”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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