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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이빨 깨물어, 뒤로 돌아" 숨진 국가대표 녹취록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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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뛴 트라이애슬론 선수 고(故) 최숙현(23)씨가 지난 2013년 전국 해양스포츠제전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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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랑해(오전 12:27)'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오전 12:28)'

1 '딸 전화 좀 받아봐. 먼 일이야(오전 12:49)' 1 '통화라도 해야 안심을 하지(오전 12:49)'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경기) 최숙현(22) 선수 엄마의 카카오톡 대화창에서 '1'자는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달 26일 한밤중 딸의 심상치 않은 문자를 받고 20분 만에 보낸 답신이었지만 읽었다면 사라졌어야 할 '1'자는 끝까지 남아 있었다. 최숙현은 이날 오전 1시쯤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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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故)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숨지기 직전 어머니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엄마 사랑해"라고 보냈으나 이후 엄마의 답변은 끝내 읽지 못했다. /이용 의원실


트라이애슬론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를 지낸 최숙현 선수는 2017년부터 경주시청 소속으로 뛰다 지난 1월 부산시청으로 팀을 옮겼다. 그는 지난 4월 8일 '경주시청 김모 감독과 팀 닥터 안모씨, 그리고 선배 2명에게 수년간 폭행과 괴롭힘을 당했다'며 대한체육회에 진정서를 내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이 4명을 폭행 등의 혐의로 고소해 대구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최숙현이 당했다고 주장한 가혹 행위는 그가 직접 녹음해 남긴 음성파일과 숨지기 전 대한체육회에 제출한 진정서 등에 생생히 담겼다. 2일 미래통합당 이용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과 진정서 등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경주시청팀 소속이던 최숙현은 전지훈련을 떠난 뉴질랜드에서 팀 닥터 안씨에게 뺨을 20회 이상 맞고 가슴과 배를 차이는 등 폭행을 당했다. 최숙현이 아침에 복숭아 1개를 먹은 것을 김 감독에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음성파일을 들어보면 팀 닥터가 최숙현과 다른 선수를 때리는 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빨 깨물어"라는 말 뒤엔 "짝" "탁" 소리가 들렸다. 이어 "어디서 이~씨, 양아치 짓을 응? 야!"라고 다그친 뒤 "커튼 쳐"라는 소리 뒤 다시 "쫙!"이라고 들렸다. 그 사이사이 최숙현은 계속 훌쩍인다. 안씨는 다른 선수도 불러내 "너는 아무 죄가 없다"면서 때렸다. 그러고는 최숙현에게 "네가 못 맞아서 얘가 대신 맞는 것"이라고 했다. 최숙현은 "제가 맞겠습니다"라며 울었다. 김 감독은 울고 있는 최숙현에게 "짜지 마라" "닥터 선생님께서 알아서 때리시는데 아프냐" "나한테 죽을래"라고 했다.

김 감독은 최숙현을 때리고 있던 팀 닥터에게 "일단 한잔하시죠, 선생님, 콩비지찌개 제가 끓였습니다"라고 말했다. 팀 닥터가 와인을 달라고 하자 "와인 저기 있습니다, 그 옆에 잔 있습니다"라고도 했다. 이들이 비지찌개를 안주 삼아 와인잔을 기울이는 동안 최숙현은 옆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최숙현은 지난해 3월 훈련일지에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이 팀은 아니다"라고 적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전국대회에서 입상하며 두각을 보인 최숙현은 중학생 때부터 김 감독과 알고 지냈다. 그는 진정서에서 '(고3이던) 2016년 다른 선수와 함께 식(食)고문도 당했다'고 주장했다. 체중이 조금 늘었다는 이유로 김 감독과 팀 닥터가 빵 20만원어치를 억지로 먹으라고 했으며, 최숙현은 먹고 토하는 것을 반복해야 했다는 것이다.

최숙현은 진정서에서 "팀 닥터가 물리치료비, 심리치료비 명목으로 16차례에 걸쳐 약 1500만원을, 김 감독과 장모 선수가 항공비 등 각종 경비 명목으로 19차례에 걸쳐 약 1500만원을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경주시체육회는 2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선수단 관리 감독 소홀을 이유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김 감독의 직무를 정지하기로 했다. 경주시체육회 소속이 아닌 안씨는 추가 조사 후 고발하기로 했다. 김 감독은 이날 인사위에 출석하며 "가혹 행위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앞서 경주경찰서는 김 감독 등을 소환 조사해 혐의를 일부 확인했지만, 김 감독 등은 녹취록에 나오지 않는 일부 혐의에 대해선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넘겨받은 대구지검은 김 감독에게 아동복지법 위반·강요·사기·폭행 혐의, 안씨와 선수 2명에게는 폭행 혐의를 각각 적용해 수사 중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일 "최숙현 선수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하루 만에 약 5만명이 동의했다. 이날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윤희 문체부 2차관에게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기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본지는 이날 김 감독의 반론 또는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했으나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었다. 팀 닥터 안씨에게도 수차례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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