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조정위 사상 첫 계약취소 결정
라임·신한금투 무역금융펀드 4건
손실 인지하고도 숨기고 계속 판매
조정수용땐 투자자에 1611억 반환
판매사들 “우리도 피해자” 반발
각종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강력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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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환매중단을 초래한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 펀드 투자 피해자들에게 판매사들이 투자 원금을 전액 돌려주라는 결정이 나왔다. 라임자산운용이 무역금융펀드 투자제안서를 통해 수익률과 투자위험 등 핵심정보를 허위·부실기재하고 판매사가 이를 투자자에게 그대로 설명함으로써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했다는 점이 인정됐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30일 금융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라임자산운용이 2018년 11월 이후 판매한 무역금융펀드에 대한 분쟁조정신청 4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결정했다고 1일 밝혔다. 계약 취소와 투자원금 전액 반환 결정은 금융투자상품 분쟁조정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금감원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과 키코(KIKO) 사태 때는 배상비율을 각각 최고 80%, 41%로 결정했다.
이번 분쟁조정은 환매중단된 4개 라임펀드(플루토·테티스·무역금융·크레디트인슈어드) 가운데 무역금융펀드 및 그 자펀드들을 상대로 한 분쟁조정 신청 건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라임펀드 관련 분쟁조정 신청건 총 672건 가운데 무역금융펀드 관련 신청 건은 108건이다.
이중 이번 분조위에 부의된 건은 4건이지만, 금감원이 대표 유형만 골라 내린 결정이기에 판매사들이 펀드의 부실을 인지한 2018년 11월 이후 가입한 투자자 모두에게 원금 전액을 돌려주라는 판정을 내린 셈이다. 이번 분쟁조정 결과에 따라 원만한 자율조정이 진행될 경우 최대 1611억원의 투자원금이 반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판매사별로는 우리은행 650억원, 신한금융투자 425억원, 하나은행 364억원, 미래에셋대우 91억원, 신영증권 81억원 등이다.
금감원이 100% 배상 결정한 라임 펀드 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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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부터 운용된 무역금융펀드는 펀드 투자금과 신한금융투자의 총수익스와프(TRS) 대출자금을 활용해 ‘인터내셔널 인베스트그룹(IIG)’ 등 5개 해외 무역금융 펀드에 투자한 상품이다. 2018년 6월 라임운용과 신한금융투자가 무역금융펀드 투자처인 IIG펀드의 기준가격 미산출 사실을 인지하고도 IIG펀드의 기준가격이 매달 약 0.45%씩 상승하는 것으로 임의조정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이후 IIG 펀드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했고, 라임운용과 신한금융투자가 이를 알게 된 것이 2018년 11월이다. IIG 투자금 2000억원 가운데 1000억원의 손실 가능성을 인지했다.
하지만 이를 투자자들에게 알리고 펀드 판매를 중단하지 않았다. 계약 시점에서 이미 투자원금의 최대 98%의 손실이 발생했는데도 알리지 않았고, 투자제안서에 수익률, 위험도, 환매 여부 등의 주요 정보를 거짓으로 기재해 판매사에 제공했다. IIG펀드의 목표수익률을 7%로 기재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금감원은 11건의 중요 내용 허위·부실 기재 등을 근거로 2018년 11월 이후 판매분이 모두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민법 제109조에 따르면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의사표시에 대해선 취소가 가능하다.
분조위는 투자자들에겐 중과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판매자의 허위 투자정보 설명, 투자자성향 임의 기재, 손실보전각서 작성 등으로 투자자들이 합리적인 투자판단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일부 판매사들은 분조위 결정에 반발하는 분위기다. 계약취소의 근거를 제공한 것은 라임운용과 총수익스와프(TRS) 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인데 왜 그 책임을 판매사에만 지우려고 하냐는 논리다.
판매사 “라임·신한금투가 저지른 잘못, 다 책임지라는 건 민법 위배”
한 판매사 관계자는 “그간 사모펀드 판매에 있어 판매사들에겐 운용사의 투자 내역을 확인하거나 감독할 의무도 없었고 그럴 권한도 없었다”며 “판매사들 역시 운용사와 수탁사(신한금융투자)가 작정하고 저지른 잘못에 대한 계약취소의 피해자인데, 계약 취소 책임을 100% 지라고 하는 건 민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과실책임주의에 위배되는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판매사들은 분조위가 전액 반환 권고의 판단 근거로 민법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권고안 불수용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다른 판매사 관계자는 “펀드 상품은 자본시장법에 근거해 만들고 판매했는데 분조위는 정작 민법상 계약 취소를 근거로 내세우며 전액 반환을 권고했다는 점에서 (권고안을 수용하기보단) 다퉈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두 차례에 걸친 법률 검토 끝에 내린 이번 결정에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판매사들은 분조위 권고 수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한 판매사 관계자는 “개별 소송전으로 가는 것은 비용이나 사회적 분위기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쉬운 결정이 아니다”라며 “분조위 권고안을 면밀히 검토해 판매사로서 투자자를 보호하면서도 회사 입장까지 합리적으로 고려한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통상 분조위 결정이 내려지고 난 뒤 일주일 내 금감원장 결재를 거쳐 권고안 결정문을 판매사에 송부한다. 판매사들은 분조위 권고안을 수령한 시점으로부터 20일 안에 금감원에 권고안 수용 여부를 통보해야 한다. 늦어도 이달 마지막주에는 판매사들이 권고안을 수용할지 말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성웅 금감원 소비자권익보호 담당 부원장보는 “라임 무역금융펀드 사례와 같이 금감원 검사 및 수사 결과 계약취소 사유가 확인될 경우에는 손해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분쟁조정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해 금융소비자 피해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겠다”며 “투자원금 전액 반환 결정이라는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오늘의 이 길이 금융산업 신뢰회복을 향한 지름길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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