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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여성국제법정’ 20주년,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맞는 운동 방향 고민할 때 [‘위안부’ 운동 다시쓰기 - 전문가 기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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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지난 5월7일 위안부 피해생존자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제기가 있은 지 40여일이 지났다. 논란의 와중에서 확인한 점은 지난 30년간 위안부운동의 국민적 평가와 함께 운동 방향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올해 2020년은 국가를 넘어선 자매애로 피해생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한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2000년법정)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00년법정은 위안부 문제를 미해결의 과제로 남긴 도쿄전범법정을 여성의 시각으로 보완하여 가해국 일본 정부와 일왕 그리고 일본군의 책임을 분명히 한 국제 민간법정이었다. 아시아 피해국의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은 2000년법정을 법정운동으로 정의했고, 아시아 시민운동으로 발전시켰다.

2000년법정을 제안한 사람은 일본의 마쓰이 야요리 선생이다. 그는 2000년법정을 마무리하고 안타깝게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나기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공로패를 전달했는데, 마쓰이 선생은 그 어느 상패보다 값지다며 고마워했다. 죽음을 앞둔 그가 고마워한 것은 부끄러운 자신의 조국 일본 정부를 향해 끝까지 함께한 정대협의 자매애였다. 마쓰이 선생은 2000년법정 직후부터 일본 우익들의 집중적인 타깃이 되었다. 그가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일본 정부를 향해 매섭게 비판의 칼을 든 이유는 이 땅에 위안부 피해자와 같은 고통이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남과 북에도 2000년법정은 가장 강력한 방식의 연대활동이었다. 준비하는 3년 동안 남과 북의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공동검사단을 구성하고 공동기소문을 작성했다. 북의 박영심 할머니, 남의 김복동 할머니 등이 증인으로 나서면서 남북 공동검사단은 일본 정부에 국제법에 의한 법적 책임을 추궁했다. 그 어떤 남북 연대활동이 이처럼 강력할 수 있겠는가?

성과는 동시에 반발을 가져왔다. 1990년대 후반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실리는 등 개선 조짐을 보였던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2002년 일본 우익교과서 후쇼샤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를 삭제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반적으로 개악되어왔다.

반면 아시아 시민운동은 대안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다. 일본 우익들은 ‘기억의 흔적’을 지우려고 시도했지만, 한·일을 비롯한 아시아 시민운동은 ‘공동의 기억’ ‘공동의 인식’을 위한 다양한 역사대화를 진행했다. 그 결과물이 한·중·일 공동역사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한·일 공동역사교재 <마주 보는 한일사> 등이다. 20년 넘도록 다양한 계층에서 역사대화를 지속하고 있다.

현재 논란 중인 위안부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운동 방향이다. 2000년법정은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고자 한·일, 남북 더 나아가 국제 연대를 통한 법정운동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역사의 증인, 피해생존자에 대한 대책을 포함하여 2020년 시대적 요청에 맞는 운동 방향의 고민과 모색이 필요하다. 향후 운동을 위해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반성과 성찰을 통해 위안부운동의 성과와 부족한 점을 짚어보자. 그동안 시민운동은 대의와 헌신에 충실한 메시지 중심이었다. 그러나 2020년의 방식은 메시지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가 어떻게 유통되는지, 어떤 메신저가 발신할지 고민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이 일은 활동가와 피해자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을 만들어내는 공론장을 통해 갈등을 극복하자. 보여주기 일회성 토론이 아닌,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피해자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일이다. 베를린 시내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3년간 베를린 시민들의 토론 결과였다는 점, 독일 홀로코스트 부정방지법 역시 오랜 시간 토론을 거쳤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용수 할머니의 바람대로 청소년 역사교육과 함께 시민교육을 강화하자. 앞서 말한 대로 다양한 역사교재들이 출판되었다. 학교교육과 평생교육, 시민교육 등 각 영역에서 교재의 활용도를 높이고 세계시민교육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견제와 균형에 기반한 정부와 시민단체, 국회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정부는 피해생존자 17분을 직접 챙기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이분들이 살아 계실 때 외교적 노력을 다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회는 연구의 안정적 토대를 위한 입법을 즉시 진행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전 국민적 차원의 교육과 연대활동, 기념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30년이라는 시간은 한 세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가 오는 자연스러운 시간이다. 지금까지 위안부 논란은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성장통이다. 소모적이기보다는 의미 있는 논쟁으로 이 사회를 성숙하게 만들어보자.

경향신문은 <‘위안부’ 운동 다시 쓰기> 기획 시리즈를 마치며 전문가들의 제언을 기고로 싣는다. 양미강 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총장의 글을 시작으로 정유진 전 도시샤대 조교수,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김정란 여성학 박사 등의 글을 이어서 게재할 예정이다. 글을 통해 ‘위안부’ 운동의 안과 밖을 두루 살피며 향후 시민과 함께하는 위안부 운동의 방향을 모색해본다.


양미강 | 전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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