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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로봇이 온다

코로나로 생산라인 마비되자…로봇사원이 현장 달려가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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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붙은 원격혁명 (上)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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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만종의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 A사는 최근 '팀장급 로봇'을 채용했다. 일명 'R팀장'은 인공지능(AI)을 탑재하고 있어 다른 '로봇사원'보다 뛰어난 능력을 자랑한다.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판단하는 기능을 갖춘 것이다. R팀장은 매일 1만여 종의 상품 가격 변동을 스크리닝하고 오늘의 할인 제품을 리스트업해 영업사원들에게 알려준다.

자체적으로 5% 할인 판매 권한을 부여받은 김인철(가명) 매니저는 부서장에게 추가 할인이 가능한지 자주 묻는 타입인데, R팀장은 김 매니저의 할인 문의 패턴을 파악하고 해당 부서장에게 추가 할인 가능 여부를 알아서 올려준다. R팀장 덕분에 김 매니저는 매일 아침 할인 결재를 일일이 받아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자체 생산 공정과 전국 판매 대리점을 확보하고 있는 중견 제조업체 B사 대표는 최근 모든 직원들에게 로봇비서를 붙여주라는 '특명'을 내렸다. 인턴이나 보조사원 역할을 하는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obotic Process Automation·RPA)'를 말한 것이다. 이 회사에는 공장별 생산량과 제조 공정 일지, 전국 대리점 판매 현황과 재고 내역 등 매일 쏟아지는 데이터를 정리해 보고하는 업무가 많았다. 사람이 입력하고 편집하느라 몇 시간씩 허비해야 했던 단순 업무를 로봇사원에게 맡겨 자동화하기로 B사 대표가 결심한 것이다. 직원들이 단순업무 부담을 덜게 돼 보다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로봇사원들이 기업에 속속 채용되면서 대한민국 '원격 혁명'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사람이 접근할 수 없었던 곳에 움직이는 로봇을 보내 원격 조종으로 현장을 수습했던 것처럼 이제는 산업 전반에서 로봇 소프트웨어(SW)를 활용하는 사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챗봇 기능이 탑재된 RPA가 도입된 후 콜센터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보안과 고객 서비스 때문에 유연근무가 어려웠던 금융권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때 코로나19 피해가 심각했던 지방에 생산 거점을 둔 모 대기업 계열사는 자가격리 등으로 직원들의 제조 현장 방문이 어렵게 되자 RPA를 투입해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로봇사원을 활용해 업무를 원격 처리한 셈이다.

직원들이 을지로 본사 대신 집에서 10~20분 거리의 거점 오피스에 출근토록 해 근무 혁신을 꾀하겠다고 선언한 SK텔레콤은 아예 전담 부서를 두고 각 사업부에 특화된 '맞춤 RPA'를 만들어주겠다고 나섰다. RPA는 사람 업무를 대신해주는 솔루션으로, 단순반복 업무를 덜어줘 직원들의 원격근무 여건을 한층 수월하게 만들고 있다.

RPA는 디지털 혁신 차원에서 테스트하는 수준이던 초기 도입기를 지나 올해부터는 본격 성장기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년 안에 '1인 1로봇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RPA를 일부 업무에 투입했던 한 금융사는 효과가 검증되자 올해 로봇사원 채용 규모를 1000~2000명까지 늘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RPA 솔루션 빅3 기업(유아이패스, 블루프리즘, 오토메이션애니웨어)의 실적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한국 RPA 시장의 지난해 성장률이 300%에 달하고 코로나19가 강타한 올해도 200%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RPA 최적화를 조언해온 조명수 한국딜로이트그룹 파트너는 "대한민국 대기업은 거의 100%, 중견·중소기업은 절반 정도가 RPA를 접목했다고 보면 된다. 무엇보다 'RPA가 뭐냐'고 묻는 사람이 없어졌다"면서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경영진이 RPA 추가 도입을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RPA 도입 초기에는 인사·재무, 단순반복 업무 등에만 제한적으로 도입됐지만, 점점 다양한 기능이 접목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인턴이나 신입사원 수준에서 불과 1년 만에 과장·팀장급 업무까지 할 수 있게 됐다는 비유가 가능하다. 사무 지원 영역에 머물렀던 RPA가 영업이나 고객 응대 같은 서비스 영역으로 확장되고, 최근에는 제조·생산 현장에도 적극 투입되는 추세다. 조 파트너는 "초기에는 로봇사원에게 팔과 다리 정도만 있었다면 이제는 눈(영상 판독)과 귀(음성 인식), 두뇌(AI)까지 생겼다"며 "사람과 점점 비슷하게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용어 설명>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 비즈니스 과정 중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 프로세스에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자동화하는 것을 뜻한다. 로봇과 인공지능, 드론 등 인간의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기술 발전이 폭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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