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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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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꽃밭' 詩로 반격한 靑비서관…진중권의 답시는 '빈 똥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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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신동호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책임지는 신동호 청와대 연설비서관과, 문재인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1일 기형도 시인의 ‘빈 집’을 변용한 시로 공방을 벌였다. ‘빈 집’은 기 시인이 사망하기 직전에 발표한 시로 사랑의 상실을 다루고 있다.

신 비서관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기형도의 빈집을 기리며’라는 부제가 붙은 ‘빈 꽃밭’이라는 제목의 시를 올렸다. 그는 시 도입부에 “어느 날 아이가 꽃을 꺾자/ 일군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아이는 더 많은 꽃을 꺾었고/ 급기야 자기 마음속 꽃을 꺾어버리고 말았다”고 썼다. 여기서 ‘아이’는 진 전 교수를 가리키는 듯 하다.

신 비서관은 강원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4년 ‘오래된 이야기’로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시인이다. 그는 2015년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취임했을 때 대표 메시지를 쓰는 비서실 부실장으로 일한 이후 쭉 문 대통령의 연설을 책임져 왔다. 신 비서관은 지난 2월 스위스 화가인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파국을 걱정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림에 대한 설명을 쓰며 진 전 교수의 해석을 인용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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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온국민공부방 제1강 '우리 시대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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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비서관의 시에 진 전 교수는 페이스북에 “옛날엔 정치투쟁에도 포에지(poesie, 시의 세계가 가지는 정취)가 있었죠”라며 “정치적 논쟁에도 문학적 향취를… 좋은 일입니다. 받았으니 저도 예의상 답시를 써 드려야겠죠”라고 썼다.

그리곤 ‘신동호의 빈 꽃밭을 기리며’라는 부제로 ‘빈 똥밭’이라는 제목의 시를 올렸다. 진 전 교수는 “어느날 아이가 똥을 치우자/ 일군의 파리들이 아우성을 쳤다./ 아이는 더 많은 똥을 치웠고/ 급기야 그들 마음 속의 똥을 치워버리고 말았다.”고 썼다. 시는 “아이는 문득 기형도가 불쌍해졌다”로 끝난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 신동호 비서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시

빈 꽃밭

- 기형도의 빈집을 기리며

(어느 날 아이가 꽃을 꺾자

일군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아이는 더 많은 꽃을 꺾었고

급기야 자기 마음속 꽃을 꺾어버리고 말았다)

꽃을 잃고, 나는 운다

문자향이여 안녕,

그림은 그림일 뿐, 너를 위해 비워둔 여백들아

도자기 하나를 위해 가마로 기어들어 간

예술혼이여 맘껏 슬퍼해라

꽃을 피워야할 당신이 꽃을 꺾고

나는 운다, 헛된 공부여 잘 가거라

즐거움(樂)에 풀(艸)을 붙여 약(藥)을 만든

가엾은 내 사랑 꽃밭 서성이고

울고 웃다가, 웃다가 울고 마는 우리들아

통념을 깨는 곳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부조화도, 때론 추한 것도 우리들의 것이었다

숭고를 향해 걷는 길에 당신은

결국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지만

꽃을 잃고, 우리는 울지 않는다.

■ 진중권 전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시

빈 똥밭

-신동호의 빈꽃밭을 기리며

어느날 아이가 똥을 치우자

일군의 파리들이 아우성을 쳤다.

아이는 더 많은 똥을 치웠고

급기야 그들 마음 속의 똥을 치워버리고 말았다.

똥을 잃은 그가 운다

똥냄새여 안녕,

그림은 그림일 뿐, 너를 위해 비워둔 여백들이여

출세 하나를 위해 기와집으로 기어들어 간

예술혼이여 맘껏 슬퍼해라

같이 쌀 줄 알았던 아이가 똥을 치우니

그가 운다, 몹쓸 공부는 잘 가라며

쌀(米)을 바꿔(異) 똥(糞)을 만든

가엾은 네 사랑 똥밭 서성이고

울고 웃다가, 웃다가 울고 마는 파리들아

똥냄새 나는 곳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추한 똥도, 때론 설사 똥도 그들의 것이었다

청결을 향해 걷는 길에 아이는

결국 청소하다가 지쳐 주저앉았지만

똥을 잃고도, 파리들은 울지 않는다.

똥 쌀 놈은 많다며 울지 않는다.

아이는 문득 기형도가 불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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