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전체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초안에 대해 투표하고 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
지난해 6월 송환법 반대로 인해 촉발된 홍콩 시위가 일어난 지 1년 된 9일 홍콩 시민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이 전했다.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강행하면서 홍콩 내 범민주 진영을 공권력을 투입해 무력화할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많은 홍콩 시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민주화 시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강경책 앞에 무력함을 느끼고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살고 있다는 건설노동자 A씨(37)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어른이 와서 괴롭히는 꼴”이라며 “무력함과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71세인 쵸우씨는 “우리는 우리가 중국에 맞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세계는 홍콩을 강압하는 중국의 민낯을 지켜보고 있다”고 한탄했다.
◆1000번 넘는 시위에…경찰력 사상 최고 수준으로 강화
가디언에 따르면 1년을 이어온 시위로 8900여명이 체포됐고 이 가운데 약 40%는 학생들이다. 시위는 크고 작은 것을 합쳐 1000번 넘게 진행됐다.
지난 2019년 9월 3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 나온 홍콩 시민들이 중국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건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강행하면서 홍콩의 경찰력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강화됐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홍콩 의회가 전날 승인한 2020∼2021년도 예산안에는 경찰 정원을 기존보다 7% 늘려 3만8000여명까지 증가시키는 경찰력 강화 방안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홍콩의 인구 10만명 대비 경찰 수는 내년에 442명에 달해 최근 20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하게 됐다.
경찰 운영 예산도 전년도보다 24.7%나 늘어 219억홍콩달러(약 3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61억홍콩달러(약 9400억원)는 소총, 최루탄, 방패 등 시위 대응 장비를 구매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이는 전년도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SCMP는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강경파인 크리스 탕이 홍콩 경찰 총수인 경무처장에 임명된 이후 홍콩 경찰은 시위에 대해 공격적인 선제 진압 전술을 전개하고 있다. 홍콩 경찰은 지난 1년간 시위 진압 과정에서 1만6223발의 최루탄과 1만108발의 고무탄, 2033발의 빈백 건(bean bag gun·알갱이가 든 주머니탄) 등을 발사했으며, 실탄도 19발 쐈다. 이로 인해 1700여 명이 부상했으며, 학생 3명은 실탄에 맞았다.
지난 2019년 8월 17일 홍콩 카오룽반도 몽콕경찰서 인근 거리에서 진압 경찰이 시위대를 쫓고 있다. 연합뉴스 |
전문가들은 홍콩의 상황에 우려를 나타냈다. 홍콩 인권단체 민권관찰은 “홍콩의 경찰력은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를 감시할 제도는 갖춰져 있지 않다”며 “정부가 경찰을 동원해 반대 목소리를 억누른다면 홍콩은 ‘경찰 사회’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주민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홍콩 주민들의 해외 은행 계좌 개설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계 금융기관인 HSBC와 스탠더드차터드(SC)에는 최근 홍콩주민의 해외 계좌 개설 문의가 25∼30% 증가했다. 최근 HSBC에 해외 계좌 개설을 문의했다는 메이 찬(39)씨는 “가장 큰 걱정은 홍콩 달러를 자유롭게 환전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움직임에 맞서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박탈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강경일변도 중국에…식어버린 홍콩 시위
홍콩보안법의 충격 때문인지 홍콩의 범민주 진영은 반대 시위조차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1년 사이 많은 시위대가 체포된 탓에 동력이 많이 상실한 탓이 크다. 그간 체포된 시위대 8981명 가운데 1749명이 기소, 10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SCMP는 “대규모 체포,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 경기침체 심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시위 동력의 상실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홍콩 시민들이 텐안먼 시위 유혈 진압 31주년을 맞아 지난 4일 출입이 금지된 시내의 빅토리아 공원으로 진출해 시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코즈웨이베이=AP연합뉴스 |
하지만 여전히 홍콩 시위의 불씨는 살아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경찰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지난 4일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31주년 집회에 1만여명에 달하는 홍콩 시민이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 반중 구호 등을 외친 것이 그 예다. 홍콩 빈과일보가 홍콩민의연구소에 의뢰해 지난 1∼4일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7%가 ‘5대 요구를 쟁취하려는 결심에 변함이 없다’고 답했으며, 30%는 ‘결심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친중과 반중으로 갈린 홍콩은 오는 9월 입법회 선거가 운명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9월 입법회 선거에서 친중파 진영이 승리를 거둔다면 홍콩보안법 등 중국 중앙정부의 홍콩 통제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난해 11월 구의회 선거처럼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둔다면 그 작업에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톈안먼 시위 기념집회에 나온 플로렌스 첸(56)씨는 “중국이 홍콩보안법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우리는 오늘 다시 여기에 모였다”면서 “입법회 선거 등에서 다시 한 번 우리의 힘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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