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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내 책을 말한다] 플레인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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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동현 대한항공 수석 기장


1919년 네덜란드에서 최초의 항공사가 탄생한 이래 서구인들은 끔찍한 비행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재발 방지를 위한 규정을 신설했다. 미 연방항공국이 “모든 비행 규정은 피로 쓰였다”고 한 것처럼 비행과 관련된 규정은 숱한 희생의 대가로 얻어낸 경구와 같은 것들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행 격언은 “비행은 손과 발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다(Fly with your head, not your hands and feet)”이다.

몇 년 전 인천공항 이륙 직후 착륙장치의 결함을 알리는 경고등이 들어왔다. 백업이 하나 줄었을 뿐 비행기는 완벽하게 안전했지만 규정대로 나는 즉시 회항했다. 그러나 게이트에 도착하자마자 객실 승무원의 인터폰이 울렸다. "승객 한 분이 기장님을 만나기 전에는 안 내리시겠다고 합니다."

하기 불응은 공항 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중대 사항이다. 나는 게이트 앞까지 나가서 기다려 주실 것을 요청했다. 승객은 '아찔한 회항'에 대해 격렬히 항의했다. 그날 나는 승객의 오해와 분을 풀어드리지 못했다.

에어라인 기장의 책임은 승객을 안전하고 쾌적하게 목적지까지 모시는 것이다. 안전 운항의 핵심은 위험과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의 위험을 인지해 사전에 회피하는 것이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목적지에 도착해 내릴 때까지 비행의 모든 과정은 이 원칙 안에서 이뤄진다. 비행 규정을 보편적 상식으로 이해하는 사회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비행 상식은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다.

항공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흥미롭게 항공 지식을 넓히고 비행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비행기의 속살과 조종사의 욕망을 다루고 있는 ‘보이지 않는 항공 규정과 기술’을 이 책 ‘플레인 센스’(웨일북)에 적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동경해 온 비행의 경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

[김동현 대한항공 수석 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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