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도시와 라이프] 재택근무가 촉발할 도시전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나는 지금 집에서 회사 업무를 처리하고 회의를 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런 상황은 벌써 3개월을 훌쩍 넘어섰다. 내 방 책상은 이제 어엿한 업무용 '시설'이 됐다. 노트북PC 한 대만 이용하던 나는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27인치 모니터를 샀고 고급 중고 웹캠까지 구매했다. 이젠 사무실보다 근무 환경이 더 좋아진 느낌이다.

미국에서는 대형 테크회사와 화이트칼라 직군을 중심으로 재택근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 첫 포문을 연 회사는 트위터였다. 잭 도시 트위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초 일찌감치 재택근무를 영구적으로 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냈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과 페이스북 등은 이동 제한이 풀린 이후에도 올해 내내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공지했다. 이는 비단 미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재택근무를 허용하겠다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훗날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중요한 순간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0년 혹은 20년 뒤에는 루시 캘러웨이 파이낸셜타임스(FT) 기자의 글 '우리는 사무실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에서처럼 사무실 풍경을 추억 속으로만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변화는 도시적으로 큰 함의를 갖는다. 첫 번째는 앞으로 주거시설의 매력이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집은 주거시설에 더해 오피스 시설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숙박공유 플랫폼의 등장은 집에 숙박시설로서 기능을 부여했다. 주거시설이 상업시설 영역을 침범하는 모양새다. 이는 주거시설의 매력도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는 2017년 BBC와 영상 인터뷰를 하던 중 두 자녀가 방송 화면에 등장하는 '방송사고'를 일으켰다. 놀라운 반전으로 인기를 끌게 되긴 했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행운'이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주택에서 업무 공간을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분리해낼 수 있는 공간 계획을 찾아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도시 간 경쟁이 더욱 본격화할 것이란 점이다. 재택근무가 보편화하면 같은 타임존 내에서 도시 간 이동은 더 이상 문제 될 것이 없어진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 간에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CEO는 비즈니스인사이더와 인터뷰하면서 "이제 한 도시에서만 묶여 지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전 세계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몇 달씩 시간을 보내는 삶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재택근무인들은 주거비나 생활물가를 포함해 문화시설의 풍부함이라든가 사람들 간 교류 가능성, 활력도 등은 물론 건강 관련 인프라스트럭처 수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까지 모두 동원해 도시의 매력도 평가를 내릴 것이다. 뛰어난 코로나19 방역 능력으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서울은 이전보다 분명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듯하다.

국내에서도 도시 간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서울이 아닌 다른 중소 도시에서 거주할 만한 여지가 넓어질 것이다. 이는 '대도시화 현상의 역전'에 대한 이야기다. 알파벳 회장이었던 에릭 슈밋은 FT 기고문에서 "거대한 도심권은 새로운 '전염병 진원지(plague pits)'"라며 "'슈퍼 시티'에 집중되는 현상은 역전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중소 도시가 갖는 경쟁력은 밀집도가 낮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국 젊은이들이 왜 휴일에 홍대나 이태원 등을 향하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에 유흥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생활 여건에 더해 인간에게는 어떤 종류든 '재미'와 서로 간 '연결'이 필요하다. 이 점을 만들어내는 중소 도시가 부흥할 수 있을 것이다.

[음성원 도시건축 전문 작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