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충남 계모 아동학대 사건은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라는 5일 본지 보도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9살 난 아이가 말을 안 듣고 거짓말을 했다고 여행용 가방 속에 수 시간 가둔, 비정한 부모를 엄벌하라는 내용이 3000개 댓글의 주를 이뤘다.
그렇지만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에 책임을 묻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아보전이든 경찰이든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뭐든지 하려 하지 않는다. ‘사고가 안 났는데 어쩔 수 없다’는 식이라 꼭 이런 사달이 나야 대책을 운운한다. 결국 도돌이표”란 지적도 있다.
지난 1일 저녁 9살 A군이 병원으로 옮겨지는 모습. 오른쪽 노란 옷이 계모. 연합뉴스TV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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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은 사전에 막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의료진의 학대 신고까지 이뤄졌는데도 초동 조치가 미흡했던 데다, 제대로 된 개입이 없었던 탓에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신고 경로를 보면 응급실에서 신고의무자인 의료진이 전문적 판단을 거쳐 한 것”이라며 “초동 대처를 더 긴급하게, 적극적으로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아보전은 경찰을 통해 이 사건을 지난달 8일 처음 인지했지만 닷새 뒤인 지난달 13일에야 첫 가정방문을 나갔다고 한다. 충남 아보전 관계자는 “아이 아버지가 출장을 간 데다 주말이 꼈고 코로나19로 일정을 바로 잡기가 어려웠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아동학대 이미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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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만큼 집에서 만난 아이의 상태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듯했다는 것이다. 몸에 난 상처는 심한 학대가 있었다고 판단할 정도가 아니었고, 아이와 엄마의 상호작용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부모가 반성했고 아이도 부모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했다. 특이점이 없어 긴급하게 분리 조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문조차 부모 측 반대로 한 차례밖에 이뤄지지 못했다.
9세 의붓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7시간이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40대 계모가 3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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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부모에게 무언가 오래전부터 쌓여서 학대란 행위로 표출됐을 수 있다”며 “밀접한 가정 방문이 지속적으로 있었더라면 재학대 징후를 미리 인지해 적극적인 조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편견을 가져선 안되지만 재혼가정인 만큼 여러 어려움이 없는지 등을 더 세세히 살펴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아보전 입장에선 민간인 신분으로 부모가 상담을 거절할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현실적 한계도 있다. 그러나 한 아동학대 관련 전문가는 “학대 관련 조사가 아닌 상담 차원이라고 친부인 아버지를 계속 설득해서라도 아이를 계속 상담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신고를 독려하는 시민 참여형 이색 홍보물이 10일 부산도시철도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에 설치돼 있다.송봉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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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은 정부로도 향한다. 관련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아동권리과 안에 있던 아동학대대응팀을 개별 과로 독립시켰다. 인력도 5명에서 10명으로 두 배로 늘렸다. 복지부 산하에 아동권리보장원도 새로 뒀다.
이런 조치는 모두 아동보호에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명목으로 이뤄졌다.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아동학대 사건을 보면 정부가 내건 '아동이 안전한 나라' 라는 구호는 여전히 공염불에 그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아동학대 관련 전문가는 “사후에 문제가 제기되면 법을 뜯어고치고 제도적인 것을 계속 내놓다보니 관련 특례법도 만들어지고 제도는 갖춰질 만큼 다 갖춰졌다”며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전문 인력이 선제적으로 위험 높은 사례를 발굴하고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관리할 수 있게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복지부가 뭘 하려 해도 재원이 부족해 쓸 돈이 별로 없는 것도 문제다.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거나 학대 예방사업을 추진하려 해도 예산이 법무부 재원(범죄피해자 보호기금)으로 지원되는 만큼 한계가 따른다는 것이다.
매년 다르게 걷히는 벌금 등의 타부처 재원에 의존하니 안정적인 예산 확보와 사업 확대가 어렵다.
아동학대는 잊을 만하면 터진다. 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망자는 2014년 14명에서 2018년 30명으로 늘었다. 5년간 134명의 아동이 학대로 세상을 떠났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가 숨져야 할까. 더는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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