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미국 함정
4·19 혁명 60주년을 맞아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 학생운동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역사학자인 저자들이 해방 직후부터 촛불 항쟁에 이르는 70년간의 학생운동에 관해 벌인 공동연구 결과물 가운데 종이책으로 발간된 제1권은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운동의 시기별 변화와 특징을 통시적으로 서술한다.
서울대 개교와 '국대안 파동' 등을 다룬 초창기에 이어 분출(1960년대), 대결(1970년대), 혁명(1980년대), 대안(1990년대), 갈등과 균형(21세기) 등 시대별 키워드를 말머리 삼아 학생운동의 큰 흐름을 추적하고 각 운동 시기 세부적인 진행 경과를 소개한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서 양상이 급변하기는 했으나 서울대 총학생회가 5·16 쿠데타 직후 "군사 혁명 지지" 입장을 밝혔으며 대학신문 주최 좌담회에서도 참석자들이 "혁명 정부의 필승을 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을 뿐 군사정변이 민주적 헌정질서를 훼손한 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설명이 눈길을 끈다.
유인물 배포조차 '원천 봉쇄'되기 일쑤였던 1970년대 효과적으로 이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짜낸 묘안들도 흥미롭다. 만원 버스에 올라타 천장 환풍구를 통해 버스 지붕에 유인물 뭉치를 올려놓고 내려 버스 출발과 함께 자연스럽게 유인물이 살포되도록 하거나 지하철 플랫폼에서 전동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유인물을 던져 넣고 도망치는 방법 같은 것들이다.
이밖에 학생운동이 가장 치열했고 운동 노선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했던 만큼 탄압도 가혹했던 1980년대 '무림·학림 사건', NL과 CA 그룹의 등장, 6월 항쟁 등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증언과 선언문 등 각종 자료도 많이 등장한다.
제2권 사회문화사, 제3권 증언집, 제4권 자료집은 종이책으로는 발간하지 않고 서울대 도서관을 통해 온라인으로 누구나 볼 수 있게 개방하기로 했다.
한울. 416쪽. 3만2천원.
▲ 화이트 = 리처드 다이어 지음, 박소정 옮김.
'백인성(whiteness)'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15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시각 매체에 어떻게 재생산 및 보전돼 왔는지를 규명한다.
영국 워릭대학교 영화학과 교수로서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통해 재현과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는 데 주력해온 저자가 1997년 출간한 이 책은 백인성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고전으로 자리를 잡았고 수많은 후속 연구들에 영향을 미쳤다.
책은 인종적 재현이 현대 세계를 조직하는 데 중요한 문제임을 지적하면서 흑인과 아시아인의 이미지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많은 반면에 백인들은 왜 거의 고찰되지 못한 인종이 됐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한다.
저자는 백인의 속성으로서 '희다'는 개념이 검정의 반대 색이라는 단순 명사가 아니라 인종주의, 식민주의, 기독교, 여성성, 계급성, 이성애, 규범성 등의 차원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담론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고전 문학부터 대중음악, 르네상스 회화부터 20세기의 사진술,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부터 할리우드 SF 영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며 백인성의 권력이 사실상 모든 서구 문화의 기저에 하나의 '관행'으로 스며들어 있음을 드러낸다.
컬처룩. 430쪽. 2만8천원.
▲ 미국 함정 = 프레데릭 피에루치·마티유 아롱 지음, 정혜연 옮김.
프랑스 기업인이 미국 법무부를 상대로 치른 5년에 걸친 험난한 투쟁을 통해 미국이 어떻게 자국법을 이용해 다른 나라의 개인과 기업을 공격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2013년 4월 프랑스를 대표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인 알스톰의 자회사 CEO였던 저자는 미국 뉴욕 공항에서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CPA) 위반 혐의로 체포된다.
이 법에는 거래에 달러가 사용되거나 미국 내 서버가 있는 이메일을 이용한 정황이 나타나면 국적을 불문하고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저자는 자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전화할 권리도 허용되지 않고 보석 신청도 기각된 가운데 미국에서도 악명 높은 교도소에 수감된 채 알스톰의 내부 배신자 역할을 수락할 때까지 2년간 수감 생활에 이어 3년간의 보석 기간까지 무려 5년이나 자유를 박탈당한다.
미국 법무부는 이렇게 저자를 인질 삼아 알스톰에 역대 최대인 7억7천2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데 성공한다. 알스톰은 그 여파로 원자력 발전 등 국가적·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술을 보유한 에너지 사업 분야를 경쟁사인 GE에 매각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미국 사법당국은 FCPA를 적용해 미국인이나 미국 법인이 아니어도, 미국에서 발생한 부패범죄가 아니어도, 부정한 거래 과정에서 미국의 법인과 통신망, 계좌 등을 이용하기만 해도 조 단위의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할 수 있고, 해당 회사 임직원에게 징역형을 선고할 수도 있다.
무소불위의 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FCPA는 원래 해외에서 뇌물을 주는 미국 기업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미국은 전략 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 경쟁국 기업들의 기세를 꺾는 데 악용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프랑스 국영방송 편집장 출신 언론인이 함께 썼다.
올림. 424쪽. 1만9천800원.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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