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김여정 담화에 보여준 반응은 귀를 의심케 할 정도다. 북한이 엄연한 우리 국민인 탈북민을 ‘쓰레기들’이라고 비난했지만 한마디 유감 표시도 없이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입법 조치는 물론 단호한 대응까지 천명했다. 북한의 반발을 이해한다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는 반성문처럼 읽힌다.
물론 전단 살포는 남북 간 주요 갈등 요인 중 하나였고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돼온 것도 사실이다. 2014년 북한이 대북단체의 풍선에 고사총을 발사하고 우리 군이 응사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고, 2016년엔 정부가 전단 살포를 제지하는 것이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 그래서 재작년 남북 정상의 판문점선언에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를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는 합의도 담겼다.
하지만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에 대해 정부가 해당 단체를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금지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것은 국민의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논란과 함께 극심한 남남(南南) 갈등을 낳을 게 뻔한 사안이다. 그런 문제를 북한의 협박이 나오자마자 대북 설득 메시지라며 꺼내놓는 정부이니, 저자세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김여정은 어제 1인칭 화법까지 동원해 “나는 원래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걸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고 비아냥거렸다. 최고 권력자의 여동생까지 내세워 남측에 험구(險口)를 날리는 북한 독재체제도 한심하지만, 그런 조롱에 화들짝 놀란 듯 달래기에 나서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더욱 실망스럽다. 남북 관계의 진전은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이 느낄 자존심의 상처는 안중에 없고 오직 김정은 정권의 심사만 헤아리는 대북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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