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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미 시위의 단골 문구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캠페인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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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폭력에 희생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46) 사건을 계기로 미 전역으로 확산된 시위에서는 플로이드가 숨가쁘게 말했던 “숨 쉴 수 없다”와 더불어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가 단골 문구로 등장한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흑인의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시위 상황을 알리는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선 “#BLACK_LIVES_MATTER”가 디폴트처럼 따라붙는다.

조선일보

1일 캘리포니아주 샐리너스에서 발생한 시위에 등장한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문구들/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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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블랙라이브스매터는 이번 사건 훨씬 전인, 2012년 2월 미국 플로리다주 샌퍼드에서 발생한 흑인 10대 소년 트레이번 마틴의 총격 피살 사건에서 비롯했다. 당시 17세였던 마틴은 아버지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밤길에 28세의 조지 짐머먼과 시비가 붙었고, 짐머먼은 마틴을 쏴서 살해했다. 짐머먼은 자신을 히스패닉으로 등록했지만, 초기 미 언론 보도에선 ‘백인’으로 보도됐다. 2급 살인혐의로 기소된 짐머먼의 행동이 다음해 7월 정당방위로 인정돼 무죄 평결을 받자 곳곳에서 백인들이 흑인들로부터 “트레이번을 위한 복수”라는 폭력을 당했고,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35년 전 나도 트레이번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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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라이브스매터 캠페인을 시작한 흑인 여성 운동가 3명. 왼쪽부터 알리시아 가자, 패트리스 컬러스, 오팔 토메티/blacklivesmatter.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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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머먼의 무죄 평결 이후 미 전역의 100여개 도시에서 시위가 전개됐고, 흑인사회의 조직운동가인 3명의 흑인 여성 알리시아 가자, 패르트리스 컬러스, 오팔 토메티가 온라인에서 ‘블랙라이브스매터’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2014년 7월 흑인 남성 에릭 가너가 경찰의 체포를 저항했다가, 경찰이 그의 목에 두른 팔에 짓눌려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경찰은 가너가 낱개로 담배를 판다고 생각해 체포하려 했다. 가너는 당시 11번이나 “숨 쉴 수 없다”고 호소했고, 한 시간 뒤 숨졌다.

블랙라이브스매터가 주도한 첫 오프라인 시위는 2014년 8월9일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시작했다. 1.9m 거구의 흑인 18세인 마이크 브라운은 친구와 함께 퍼거슨의 한 편의점을 털어서 맥주와 담배를 들고 나왔고 출동한 경찰은 그를 뒤에서 쐈다. 브라운 일행이 애초 경찰을 도주하려 했던 것과 총을 쏘게 된 경위의 진술은 엇갈렸고, 배심원은 경찰의 무죄를 평결했다. 경찰은 그가 가게를 터는 장면이라며, CCTV 녹화 화면을 공개했다. 진보적인 언론 매체인 뉴욕타임스조차 브라운을 “결코 천사는 아니었다”고 보도했고, NYT는 이 보도로 인해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비판을 샀다. 블랙라이브스매터와 퍼거슨 흑인사회는 “두 손을 들고 체포를 기다리는 브라운을 경찰이 뒤에서 쐈다”고 주장했다. 이후 블랙라이브스매터 해시태그(#)와 문구는 공권력에 의해 흑인이 겪는 인권 유린과 희생,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상징적 문구가 됐다.

한편, 이 캠페인의 주창자 중 한 명인 오팔 토메티는 3일 주간지 뉴요커 인터뷰에서 “흑인의 인권 개선과 관련해, 이번 시위는 전과는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 시위 때엔 많은 미국인이 직장에 있었지만, 지금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실직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따져볼 시간이 많아, ‘이건 옳지 않다’ ‘직접 거리로 나가서 변화를 이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며 “거리에서 외치는 함성의 크기(volume)이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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