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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현장]손님 끊긴 한국 면세점...중국에 추월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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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00명이던 매장, 요즘 10명 미만

올해 석달새 20% 고용 인원 감소

"사드 때보다 힘들고 끝 안 보여"

中면세점, 정부 지원으로 한국 위협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면세점은 단일 매장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곳이다. 이달 1일 오후 4시30분쯤부터 면세점 공간인 9층(절반)부터 10, 11,12층을 둘러봤다. 어느 층을 가도 손님은 보이지 않고 매장 직원들만 눈에 띠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올 1월까지만 해도 국내외 고객들로 발디딜 틈 없어 12층 화장품 매장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했는데 손님 발길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했다. 외국계 유명 S화장품 매장 직원인 이상윤씨는 “오전 9시부터 밤 8시30분까지 적어도 300여명이 몰려와 매일 정신 없었는데 오늘은 종일 10여명 왔는데 절반은 구경만 하고 떠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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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롯데면세점 12층 화장품 매장 모습.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불리던 이곳에 손님은 사라지고 매장 직원들만 보인다./송의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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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99% 급감, 400만명이던 월 이용객 30만명대로

롯데와 신라,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대기업 운영 시내 면세점들은 매출 감소폭이 60~70%로 그나마 사정이 낫다. 중국 보따리 도매상(다이꿍·代工)들이 가끔씩 와서 면세품을 대량 구입해 가서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 입점업체들은 매출 감소 폭이 99%에 이른다. 김포와 제주·김해·공항 등에 있는 국내 공항면세점들은 아예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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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사태로 면세점 업계가 최악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면세점 협회의 지난달 자료를 보면 올해 4월 국내 면세점 매출액은 9867억원으로 1년 전(작년 4월·1조9947억원) 대비 반토막 밑으로 줄었다. 올해 2월 매출 2조원이 붕괴된데 이어 두 달 만에 월 매출 1조원대도 무너졌다. 작년 12월까지 400만명을 웃돌던 면세점 이용객 수는 지난달에 30만명대로 추락했다.

면세점 업계의 한 임원은 “지금 상태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때보다 더 심각하다”며 “이달 말 나올 올 5월 실적은 더 나쁠 것이며 6, 7월 실적 회복도 난망하다”고 말했다. 선(先)주문했던 이용객들의 해외 여행 취소에 따른 면세상품 반품이 늘어, 내국인 매출은 3개월 연속 ‘마이너스 매출’ 중이다. 면세점들은 매일 밤 8시30분이던 폐점 시간을 저녁 5시30분로 앞당기고, 주 3~4일 단축 근무 등으로 비용 절감을 꾀하고 있다.

“사드 때보다 더 힘들다”…면세 사업권 반납 잇따라

이런 상황에서 올 4월 국내 면세점 고용 인원은 2만7605명으로 석달 전(올 1월·3만4968명)과 비교해 21% 정도 줄었다(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다섯명 중 한 명꼴로 일터를 잃은 것이다. 중소·중견 면세기업들 사이에선 영업 중단이 속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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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 입점 면세점은 여행객 급감으로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99% 감소했다. 텅 비어 있는 매장 주변 모습/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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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SM면세점은 올 4월말 영업을 중단하고 면세점 사업권을 반납했다. 기자가 최근 찾아간 SM면세점 매장 출입문은 굳게 닫혔고 영업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랜드면세점, 시티면세점 등은 공항 면세 사업권을 포기했다. 업계의 오랜 숙원인 입국장 면세점이 작년 5월 국내에도 허용됐지만 활성화 효과는 거의 없다는 반응이 많다.
대기업들도 면세 사업에서 발을 빼고 있다. 한화그룹이 작년 9월부터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있던 갤러리마면세점 63 영업을 중단했다. 두산그룹 역시 진출 4년 만인 작년 10월말 면세점 특허권을 반납하고 두산타워 소재 면세점을 폐점했다.

기업· 종업원 등 피해자 만든 ‘홍종학법’

‘면세점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업종’이라며 대·중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진출 경쟁을 벌이던 5~6년전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당시 홍종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들이 면세점 사업을 독식(獨食)한다”며 면세점 사업권을 5년 마다 심사하도록 하는 법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이른바 ‘홍종학 법’이 적용된 2015년 겨울, 연매출 6000억원을 올리던 월드타워점은 사업권을 잃고 6개월 넘게 문을 닫았고 SK워커힐 면세점은 사업을 접었다. 두 곳에서 일자리를 잃은 직원만 2200여명이었다.

문정숙 숙명여대 교수(소비자경제학)는 “면세점 시장에 대한 이해없이 만든 ‘홍종학법’으로 인해 종업원과 소비자, 기업 모두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특허사업권을 따서 면세점업에 뛰어든 기업들은 수백억~수천억원대 적자를 낸 채 사업을 포기했고, 일자리를 잃은 종업원이나 서비스 중단·변경으로 불편을 겪는 소비자 등 모두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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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말 면세점 영업을 중단하고 현재 폐점 상태인 서울 종로 SM면세점 입구 모습/송의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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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계 4위 중국면세점올해 세계 3강 안에 들 듯

이런 와중에 중국이 대대적인 지원책을 쏟아내며 자국 면세점 육성에 나서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인 차이나듀티프리그룹(CDFG)은 2014년 9월 하이난(海南)성 싼야시에 롯데면세점 본점 매장의 6배 규모로 세계 최대 면세점을 개장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부터 59개국 여행자들이 하이난성을 무(無)비자로 여행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하이난성을 찾은 본토 방문객이 중국 입국후에도 180일동안 3만위안(약 520만원) 한도에서 온라인을 통해 면세품을 살 수 있도록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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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이난성 싼야시에 2014년 세계 최대 규모(롯데면세점의 6배 크기)로 지어진 차이나듀티프리그룹 운영 면세점 모습/baidu.com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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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원책에 힘입어 하이난성내 CDFG 면세점(총4곳)은 작년 같은 기간 매출의 80% 정도를 회복했다. 박상섭 롯데면세점 팀장은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정부 지원과 많은 관광객 지원을 받는 중국 면세점 업계가 중국과 외국인 관광객을 대거 빨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세계면세점 업계 랭킹 8위이던 CDFG는 1년 만에 4단계 뛴 세계 4위로 상승했고, 올해에는 최소한 ‘세계 3강(强)’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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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 원장은 “지난해 25조원의 매출액을 내고 3만2000명을 고용한 한국 면세 산업은 조선 산업과 맞먹는 거대 수출 산업”이라며 “국제 경쟁력을 갖고 국민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전략적 접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송의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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