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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30년된 폐가 놀라운 발견···벽지 뜯자 조선 軍고문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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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폐가 산책 중 산림청 직원이 발견

60여명 군역자 명단에 현감 직인도 뚜렷

"요충지 안흥량 일대 수군진 파악 기대"

중앙일보

충남 태안의 옛 수군 주둔지인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의 비운 지 오래된 고가(古家) 벽지에서 발견된 조선 후기 군적부 부분.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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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지 30년이 넘은 충남 태안 신진도의 빈집에서 조선 후기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힌 군적부(軍籍簿)가 발견됐다. 한지로 된 군적부는 집의 초벌 벽지로 사용됐다가 덧대 바른 벽지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노출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4일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 고가(古家) 벽지에서 19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안흥진 소속 군적부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군적부는 총 4장으로 군역 의무자 60여명의 이름, 주소, 출생연도, 나이, 키를 부친의 이름과 함께 기록했다. 전투 군인(수군) 1인에 보조 역할(보인) 1인 편성 체제로 당시 당진 현감 직인과 수결(手決‧자필 서명)도 뚜렷하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서해문화재과 진호신 학예연구관에 따르면 지난 4월 고문서를 발견한 이는 산림청 직원이다. 산책 중에 눈에 띈 폐가에 들어가보니 직인이 찍힌 한지가 벽에 붙어있고 ‘수군’이란 한자가 눈에 띄어 이를 떼어다가 연구소에 가져왔다고 한다. 연구소 측은 총 4장의 수군 군적부 외에 각각 다른 한시(漢詩)가 적힌 한지 3장도 수습했다. 주택의 상량문(上樑文)에는 ‘도광(道光) 23년’이라고 표시돼 있어 건축연대가 1843년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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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로 사용된 군적부가 발견된 충남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의 비운 지 오래된 고가(古家) 바깥 모습.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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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수군의 군적부가 발견된 고가 내부. '도광(道光) 23년'이란 명문이 적혀 있는 상량문으로 볼 때 건축연대가 1843년으로 판단된다.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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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수군 군적부는 현재까지 서울 규장각에 소장된 서산 평신진(平薪鎭) 수군 군적부 외에 알려진 게 없다. 순종 시기 작성된 평신진 군적부가 실전 투입 군인의 명단을 포수‧사수‧조타수 등 임무별로 나눈 것과 달리 이번에 발견된 군적부는 18~19세기 일반적인 군역 부과 방식인 군포(軍布) 관리가 주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호신 연구관은 “직인에 ‘당진의 현감 권’으로 표시돼 있어 19세기 당진 관리 명단을 찾아보니 순조 혹은 고종 때 군적부로 보인다”면서 “당시 충청읍지와 고지도 등을 참고해 정확한 연대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민가 벽지로 발견된 것에 대해선 “당시 군적부를 60년마다 새로 작성했는데 용도 폐기된 것을 주워 쓴 것 같다”면서 “원칙적으로는 군적부마다 중앙의 병조와 지방 관청, 수군지 현장까지 총 3부를 두는데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어 이번에 발견된 것도 이게 유일한 판본”이라고 말했다.

안흥진 일대 안흥량(安興梁)은 우리나라 최고의 험조처(물살이 빠르고 항해가 어려운 바다)로 꼽혔다. 이곳 수군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던 왜구의 침입을 막고, 안흥량 일대를 통행하는 조운선(세금 곡식 운반선)의 사고 방지와 통제도 맡았다. 또 신진도 수군진촌은 중국 사신들이 한양으로 향하기 전 정박했다 가는 곳이기도 했다. 진 연구관은 “워낙 풍광이 빼어나 중국 사신들 외에 도처의 시객(詩客)들이 몰려와 시를 짓고 놀았는데 이번에 함께 발견된 한시 3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볼 법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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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 군적부와 함께 고가의 벽지로 사용되다 발견된 한시의 일부.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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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유물이 안흥량 일대에 분포한 수군진 유적과 객관(客館, 국외 사신을 영접하던 관청 건물) 유적의 연구·복원에 중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5일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열리는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 학술세미나에서도 이를 공개할 예정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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