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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접촉 줄인다고 초3 수업이 80분···"고문이지 수업인가"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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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고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1~2학년, 유치원생 등교 개학이 시작된 지난달 27일 오전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이 입학 축하를 받으며 등교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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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딸을 키우는 김모(38‧서울 송파구)씨는 3일 오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교문 앞에 아이들과 학부모가 10명 가까이 몰려 있어서다. 교문에 들어간 뒤에는 학생 간 1m 간격을 유지하면서 발열검사를 했지만, 교문 밖에서는 거리두기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김씨는 “클럽‧교회‧학원 등 밀집도가 높은 시설은 이용을 자제하라고 하면서 등교수업을 하는 게 이해가 잘 안 된다”며 “누구를 위한 등교개학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3일 초3~4, 중2·고1 178만명이 학교에 가면서 전체 학생의 77%가 등교했다. 지난달 20일 처음으로 학교에 간 고3과 27일 등교한 초1~2, 중3·고2에 이은 3차 등교개학이다.

이처럼 등교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났지만 학부모‧학교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신규 확진자가 연일 30~40명대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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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고3에 이어 고2와 중3, 초등 1·2학년, 유치원 등의 2차 등교수업이 시작된 지난달 27일 오전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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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은 아직까지 학교 내 2차 감염이 없어 등교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상당수 학부모들은 언제 어디서든 확진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불안해한다. 초2 아들을 키우는 박모(42‧서울 구로구)씨는 “수업 중에 열이 나는 학생을 ‘일시적 관찰실’로 바로 옮긴다고 해도 같은 반 친구들이나 접촉한 학생들에게 이미 바이러스가 퍼진 이후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학교 방역지침 자체가 ‘사후약방문’ 같다”고 했다.

등교해도 수업이나 학교 생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부모들의 불만이다. 초등 2학년 딸을 키우는 이모(38‧서울 은평구)씨는 “아이가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나 교사와 말을 거의 안 했다고 하더라”며 “원격수업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굳이 등교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도 “아이 학교에서는 학생 간 접촉을 줄이기 위해 1~2교시를 합쳐 80분 수업하고 5분 쉬는데, 초등 3학년이 80분 동안 마스크 쓰고 가만히 앉아있는 건 고문일 것 같다”며 “덥고 답답해서 선생님 얘기에 집중도 잘 못 했다더라”고 전했다. 김씨는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질 게 아니면 초등학교는 원격수업으로 전환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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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중2, 초3·4학년 등교 개학 첫날인 3일 오전 부산의 한 초등학교 학생이 등교에 앞서 발열체크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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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초등 저학년 부모들은 등교수업에 신경 쓸 게 많다고 호소했다. 학교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감염예방을 위해 여분의 마스크와 숟가락‧젓가락‧알코올티슈를 챙겨야 한다.

등교 전 아이가 건강상태 자가진단을 할 수 있게 돕는 것도 부모 몫이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키우는 이모(38‧서울 성동구)씨는 “친구들과 준비물도 빌려 쓸 수 없기 때문에 빠뜨린 게 없는지 두세 번 확인해야 하고,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도 등교 전 여러 차례 강조해야 한다”며 “아이가 아니라 부모가 등교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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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중2, 초3·4학년 등교 개학 첫날인 3일 오전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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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교사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확진자가 한명이라도 발생하면 학교 전체가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3일 하교 후 학교 근처에 확진자가 나타났다는 얘기가 돌면서 전체 교사가 비상이 걸렸다”며 “코로나19가 종식하거나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는 매일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출근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보건교사 1명이 유증상자 관리와 학교 소독 등 방역업무를 도맡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경기도의 한 일반고 교장은 “아직은 초반이라 보건교사가 어떻게든 해내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이들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3차 등교가 끝난 시점에서 정부가 현장 교사와 함께 장기화 대비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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