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희생자일 가능성도 나와
지난해 12월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동 옛 광주교도소 터에서 나온 미확인 유골더미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정밀감식하기 위해 상자에 옮겨 담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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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옛 광주교도소 터에서 발굴된 미확인 유골더미에서 탄두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5·18 관련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말을 종합하면, 광주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터에서 나온 유골더미에서 탄두가 발견됐다. 발굴 당시 정밀조사를 위해 유골더미를 41개 상자에 나눠 국과수 본원으로 옮겼는데 30번째 상자에서 유골과 다른 물질이 나와 엑스선 검사를 한 결과 찌그러진 납으로 확인됐다. 국과수는 “분석 결과 카빈총에서 격발된 탄두로 보인다. 산화작용 등으로 정확한 생산 시기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국과수는 지난달 26일 광주고검 대회의실에서 5·18기념재단, 5·18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광주지검, 광주지방경찰청, 법무부 등 유관기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브리핑을 열어 이런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해당 유골이 5·18과의 연관성은 적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5·18 당시 계엄군은 엠(M)-16 소총을 사용했는데 엠-16 소총의 탄환 구경은 5.56㎜로, 카빈소총 탄환 구경(7.62㎜)과 차이가 난다.
일각에서는 유골의 상태가 오래된 것으로 봤을 때 카빈소총이 주로 쓰인 한국전쟁 전후 희생자일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광주교도소는 1908년 광주시 동구 충장로의 광주감옥을 시작으로 1912년 동명동을 거쳐 1971년 문흥동 터로 이전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동명동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던 보도연맹원 등 수십명이 총살됐다는 구술기록이 있다. 이때 희생자 주검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문흥동 광주교도소 시절에는 교수형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현재까지 유골이 묻힌 경위를 알 수 있는 근거나 단서는 찾지 못했다. 다만 기술 발전으로 전체 유골 261구 중 4분의 1가량에서 유전자를 추출할 수 있어 추출작업이 완료되면 5·18 행불자 가족과 유전자 대조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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