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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자전거를 탄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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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내가 자전거를 탔다. 씽씽. 초여름 바람을 가르고 장미 넝쿨을 스치며. 몸의 중심을 기억해내고 바퀴의 힘을 믿으며. 거의 40년 만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남들 다 타는 자전거지만 운동 신경 영꽝인 중년 여자에게는 몹시 굉장한 사건이다. (웃음) 내가 자전거를 탈 줄 안다니. 그걸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니. 첫사랑 마주친 것보다 더더 설?�다. 진짜다. 난 열살에 자전거를 배웠다. 워낙 겁이 많아서 꽤 오래 보조 바퀴가 달린 세발 자전거를 탔다. 어느새 친구들은 두발 자전거로 쌩쌩 달려나갔다. 안되겠다. 나도 타고 말겠어! 한 몇번 대차게 넘어졌지만 악으로 깡으로 뒤뚱 뒤뚱 그러다 곧 씽씽 대열 합류. 초등학교 때까지는 신나게 동네 골목을 누볐던 것 같다. 그러다가 여중 여고를 다니며 새침하느라 자전거는 영영 잊었다.

몸의 기억은 이토록 놀랍다. 각인일 것이다. 어딘가 아로새겨진 감각. 나의 양 손이 자전거의 수평을 기억해냈고, 나의 두 발이 자전거의 동력을 회복해낸 것이다. 물론 몇 번 비틀거리긴 했지만 금세 곧 완벽하게. 신기했다. 몸이 잊지 않았다는 것. 체득한 것의 각인 효과. 유년의 기억들이 장미 넝쿨처럼 피어 올랐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멀리 북한산이 보이던 정릉의 양옥집, 넓은 창이 있던 응접실, 갈색 가죽 소파, 굵은 실의 직조가 폭신했던 녹색 카페트, 그리고 사방을 둘러친 그림들. 방안 가득한 병풍 속의 사계절 속에서 잘도 놀았다. 그림 속의 정물들 안에서도 재미를 찾아냈다.

나의 유년은 자전거로 달려와서 그림 앞에 멈췄다. 둘 다 특별한 경험이고 추억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심산 노수현의 병풍 속에는 인물들이 나온다. 소나무 아래서 갓을 얼굴에 턱 하니 올려두고 낮잠 자는 선비. 한없이 여여하다. 낭떠러지에서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를 가만히 바라보는 선비. 그 시선과 마음을 배운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사람을 생각하는 관점도 그 때 터득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자전거와 그림이 있는 유년은 선물인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화 예술 교육은ㅡ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예술은 교육이 아니라 환경이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ㅡ너무 그 가치가 간과되고 있다. 모든 교육이 입시와 결과에 함몰되어 있다보니 과정의 사유와 성찰은 안드로메다에서 뜬구름 잡는 소리이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 자전거처럼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는 것. 예술처럼 일상 속에서 가까이 자주 누려야 한다는 것. 특히 유년기에 그리해두면 그 경험이 아로새겨져 평생 기억된다.

자전거를 타며 깨닫는다. 스스로에게 더 좋은 것, 더 즐거운 것을 가르쳐야 해. 체득하게 해야 하고. 몸에 새겨진 감각은 절대 잊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환경으로 접하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 내 동생은 마흔 네살인데 이제 막 자전거를 배우고 있으니까. 뒤뚱거리면서도 자전거를 탄 막내 동생의 얼굴은 어린 아이의 그것처럼 생기와 웃음으로 가득찼다. 행복한 기억 하나가 막 아로새겨지는 중일테지.

예술도 자전거를 타고 온다. 마음에 중심을 잡아야 하고, 두 발이 움직여야 한다. 그림 앞의 시선은 다정해지고 마음도 온건해진다. 때마침 싱그런 바람이 불어와 달리기 너무 좋은 길. 다만 내가 기꺼이 페달을 밟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지. 그렇다면 처음의 뒤뚱 뒤뚱은 아무것도 아니다. 예술을 누리며 천천히 달려가는 생의 길이라니. 첫사랑을 다시 만난 것보다 오백배 멋질거다. 진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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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나라갤러리 대표/ <봄말고 그림>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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