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 녹취록이 공개된 가운데, 한국방송공사(KBS) 내부에서 KBS의 윤 대통령 녹취 보도에 대해 "참사 수준"이라며 '파우치' 발언으로 논란이 된 윤 대통령과 박장범 신임 사장 후보자의 특별 대담에 이은 또 하나의 흑역사가 될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는 1일 성명을 내고 전날 공개된 녹취록에 대해 "그동안 명태균 씨의 전언으로만 전해졌던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을 뒷받침할 대통령의 육성 녹취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이어 "향후 대한민국 정국에 태풍의 눈이 될 만한 내용으로 당연히 국민들이 알아야 할 내용이며,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국민에게 자세히 검증, 보도해야 할 내용"이라며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그 의무를 져버렸다"고 밝혔다.
KBS <뉴스 9>이 전날 보도한 총 30개의 리포트 중 윤 대통령 녹취록 관련 리포트는 3개였다. 이마저도 북한 군의 우트라이나-러시아 전쟁 참전 관련 리포트 7개 뒤에 배치돼 방송 시작 15분을 넘겨 보도됐다.
반면, 문화방송(MBC)과 서울방송(SBS)는 윤 대통령 녹취록 관련 리포트를 각각 <뉴스데스크>와 <8 뉴스> 전면에 배치했다. MBC는 총 28개의 리포트 중 녹취록 관련 리포트를 10개 방송했으며, 이어 김 전 여사의 명품백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사건이 다시 검찰의 판단을 받게 됐다는 리포트를 덧붙였다. SBS는 총 30개의 리포트 중 녹취록 관련 보도를 11개를 내보냈다.
대표적인 보수 종합편성채널인 티비조선(TV조선)도 윤 대통령 녹취록 관련 리포트를 5개 방송했다. TV조선은 정치부 기자를 스튜디오에 출연시켜 향후 녹취록이 몰고올 파장과 법적 쟁점을 짚는 리포트도 내보냈다.
KBS본부 쟁대위는 "보도량에서 부실 논란을 피하기 힘들다"며 "내용면에서도 처참하다"고 했다.
이들은 "민주당의 녹취 공개 및 비판, 대통령실의 해명 및 여당의 방어 논리, 명태균 수사 상황 등을 3꼭지로 사실상 정리해 전달만 했을뿐이다. 또한 윤 대통령과의 녹취를 사용하긴 했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을 뿐더러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그 흔한 CG나 자막 조차 깔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이번에 공개된 녹취로 인해 당내 경선 이후 연락을 끊었다는 대통령실의 해명은 거짓임이 드러났고, 그간 공개된 녹취는 사기를 돋우기 위한 립서비스 정도라던 명태균의 주장 또한 무색해졌지만 제대로 짚지조차 않았다"며 "게다가 윤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 여야 공방 형식으로 다뤘을 뿐 깊이 있게 분석하는 취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KBS본부 쟁대위는 보도 수뇌부를 향해 "이게 당신들이 말하는 저널리즘인가! 최소한 그동안 공개된 녹취를 살펴보면서 사건의 전체적 맥락을 파악해보려는 노력이라도 했는가"라며 "이번 KBS의 윤 대통령 녹취 보도는 부실을 넘어 보도 참사라 할 만한 수준으로 또 하나의 KBS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10월 31일 자 KBS <뉴스 9> 리포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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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본부 쟁대위는 "사실 이번 KBS의 윤 대통령 녹취록 부실 보도 참사는 예정돼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며 "당일 오전 편집회의에서 녹취록 부실 보도에 대한 지적이 나왔지만 최재현 보도국장 발령자(정치부장)는 '명태균 녹취는 계속 비슷한 얘기를 중계하듯이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중요한 계기가 있으면 다룰 것'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전했다.
이어 최 부장이 윤 대통령 녹취록에 대해 "이건 좀 논쟁적 사안이고 지속되는 사안이다"라며 "중릭적으로 주관적 부분은 자제하면서 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또 할 것이다. 다만 정쟁의 중심에 들 생각은 없고 그런 것보다는 국가 안보 등에 더 신경을 쓰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KBS본부 쟁대위는 "이번 보도 참사 전에도 명태균 녹취록,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김대남 녹취록 등 김 여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며, 수 차례 공정방송위원회 개최도 요구했지만, 사측은 편성권을 운운하며 공방위 개최를 끝끝내 거부했다"면서 "오로지 윤석열 정권의 유지를 위해 KBS 보도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파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KBS 사내 게시판에도 <뉴스 9>의 윤 대통령 녹취록 보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올라오고 있다.
한 직원은 전날 MBC, SBS, TV조선 등에서 톱 뉴스로 해당 내용을 보도한 것과 달리 "(KBS는) 14분 45초 동안 '북한 군 러시아 파병' 뉴스"를 보도했다면서 "정파성을 떠나 보편타당한 시각과 균형감각으로 우리 시대의 매일 매일을 기록하고, 따져 들고, 대안을 제시하는 뉴스가 KBS뉴스여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해당 직원은 이어 "<뉴스 9> 홈페이지에 있는 문구 '공정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깊이 있는 심층 분석을 통해 시청자가 주인이 되는 뉴스를 만들어갑니다'를 읽다 보니 낯이 뜨거워진다"며 "KBS 뉴스가 비단 담당 부서, 특정 직종뿐 아니라 KBS 구성원 모두의 자랑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어제의 뉴스는 비애를 넘어 서글픔까지 느끼게 한다"라고 한탄했다.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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