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법 구창모 판사, 상해죄 피고인 무죄선고
구 판사 "불법적 공격이 있으면 적극 방어해야"
"머리채 잡는 데 저항하다 상대방 상해한 것"
대전지법의 한 판사가 이런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공격이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걸 허용해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대전지방법원.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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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법 구창모 부장판사는 최근 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학원 강사인 A씨는 지난해 5월 2일께 대전 서구에 있는 C학원에서 자녀 문제로 격앙된 학부모 B씨와 몸싸움을 했다. 이 상황을 문제 삼은 B씨는 상해 혐의로 A씨를 고소했다.
판결문에 나타난 고소 내용에 따르면 B씨는 학원을 찾아 자신의 자녀가 다른 학원생에게 맞은 것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강사 A씨가 B씨에게 시비를 거는 말투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자 B씨는 오른손으로 강사 A씨의 왼쪽 팔과 얼굴 부분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상해를 입혔다. 이를 방어하던 A씨도 손으로 B씨의 양쪽 팔과 왼쪽 어때 등을 수회 때려 상해를 입혔다.
이와 관련 구 판사는 사건 전모에 대해 "B씨가 때리려는 듯 들어 올린 손을 A씨가 밀쳐냈고, B씨는 이를 폭행으로 인식해 피고인 머리채를 잡았다. 피고인 A씨는 그 손을 풀어내려고 발버둥 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머리채를 잡힌 피고인이 저항하는 과정에 있었던 만큼 그에게 상해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구 판사는 "원칙적으로 신체가 손상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공격이 있을 경우 그걸 방어하는 것이 폭넓게 허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씨가 피고인을 때리려고 하거나 머리채를 잡아 흔든 것은 명확한 침해행위로 봐야 하므로 피고인 A씨 행동을 방위 행위로 평가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구 판사는 "우리 사회에서는 '싸움이 나면 무조건 맞아라'라는 말이 마치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며 "지극히 후진적이고 참담한 법률문화 단면이 노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 판사는 이어 "A씨에게 상대방이 머리채를 잡건 어찌하건 국가 또는 법이 알아서 해결해 줄 테니 아무 저항도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며 "피고인의 행위는 부당한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소극적 저항수단으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56년 전 성폭행을 시도하려던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씨 변호인단이 지난달 6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청구를 위해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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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21조 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구 판사는 "2012년 발표된 한 형사법교수의 논문에서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60여년의 역사 속에서 대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용해 위법성을 조각한 사례는 14건에 불과하다'라는 내용이 있다" 고 했다. 최근 부산에서는 성폭행을 피하려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징역을 살았던 70대 여성이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기도 했다.
조수연 변호사는 "상대의 부당한 공격에 방어하기 위해 한 행동이 쌍방으로 엮여 같이 처벌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정당방위는 폭넓게 허용해야 하며 높아진 국민 권리의식에 맞춰 합리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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