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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여적]위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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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3D로 제작된 페이스북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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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When the looting starts, the shooting starts).” 미국 마이애미 경찰서장 월터 헤들리가 1967년 흑인 시위 때 폭력 보복을 공언하며 처음 입에 올린 말이다. 인종차별을 담은 끔찍한 표현으로 악명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이 말을 올렸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 군중을 ‘폭력배들’(thugs)이라 지칭한 뒤였다. 이후 비난이 커지자 트럼프는 “그 말의 유래를 몰랐다”고 발뺌했다.

트럼프의 겁박성 막말에 대한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대응은 정반대였다. 트위터는 “폭력 미화 행위에 관한 운영 원칙 위반”이라고 명기하며 게시글을 숨김 처리했다. 지난달 26일 ‘우편투표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트럼프의 메시지에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는 경고 문구를 붙인 직후 트럼프가 폐쇄 운운하며 소셜미디어 규제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뒤끝을 작렬시켰음에도 굴하지 않고 제재를 가한 것이다. 반면 페이스북은 아무 조치도 않고 게시글을 그대로 뒀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와 통화한 뒤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했고, “즉각적 위험을 유발하지 않는 한 최대한 많은 표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것이다.

불똥은 페이스북으로 옮겨붙었다. 트럼프의 문제 발언을 제재하지 않는 회사 방침에 항의하는 내부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직원들은 부끄럽고, 용납될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경쟁사인 트위터에 경의를 표한다는 간부도 나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재택근무 중인 페이스북 직원 수백명이 지난 1일 하루 동안 회사 정책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부재중’을 표시하는 방식의 온라인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트럼프 수렁에 빠진 페이스북이 또 큰 위기를 맞았다. 트럼프 눈치보기를 여실히 드러낸 저커버그의 위기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의 리더십이 잘못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와 다르다. 침묵은 공범이고, 인종차별에 중립은 없다는 구성원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이 위기를 벗어날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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