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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은미희의동행] 어머니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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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과의 인연도 마찬가지여서 일로 만났든, 아니면 마음을 주고받은 연인이었든, 인연이 다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마음 같아서야 한 번 맺은 인연들은 주어진 생의 시간이 다할 때까지 여일하게 이어가면 좋으련만 어쩌랴.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감정의 수명은 그보다 짧으니, 우리의 삶속에는 어쩔 수 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기실 그 만남과 이별은 우리를 더 성숙하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그만큼 더 풍요롭게 가꾸어 준다. 가끔 기억 속에 은밀히 저장돼 있는 한때의 사연들을 꺼내보며 미소짓기도 하고, 홀로 민망해하기도 하며 삶을 견디거나, 그 잘못을 표본 삼아 궤도를 수정하곤 한다.

성숙한 사람은 이별에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인연이란 처음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하다. 아름답게 결별하는 일. 그것은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그만큼 냉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이별에 상당히 취약한 사람이다. 공식적으로 진단받은 건 아니지만 이별에 대응하는 나의 행동패턴들을 보면 약하게나마 분리장애가 있는 듯하다. 굳이 변명하자면 그 안에는 얼마간 나의 오만과 자만과 교만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좀 더 노력하면 이미 식어버리고 끝장나 버린 관계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고 온기를 회복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희망이 그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어쨌거나 이 분리장애의 고충은 지금도 여전하다. 나는 아직 이태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내드리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의 방은 아직 깊은 바닷속 같은 적막과 어둠을 품고 있고,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들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작 두 마리가 나뭇가지에서 쉬고 있는 화려한 자개농과 이불들, 평소 아끼시던 옷가지와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들이 어머니와의 추억을 간직한 채 어머니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 어머니의 숨결과, 손때와, 체취가 묻어 있는 그것들을 버리는 일이 마치 어머니를 버리는 것만 같아 주저하고 망설였던 것이다. 그것들은 그저 하나의 무정물인 사물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물건들을 어머니와 동일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한참 지나고서도 이런 유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정말 다정도 병이다. 어머니는 생전에 그랬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자꾸만 떠올리는 나를 보고. “그만 잊어라. 네가 그러면 가야 할 사람이 못 간다.” 어머니도 그럴지 모른다. 성숙한 사람은 이별하는 법도 지혜롭다는 것을 아는데,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하지만 이제 어머니를 보내드려야 된다는 것을 안다.

문득 한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폭풍 몰아치는 밤/빼꼼히 열린 문이 꽝하고 닫힐 때 /느낄 수 있다 /죽은 사람들도 매일 밤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한다는 걸……” 이제 정말 어머니를 보내드려야겠다. 그게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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